김수혜 도쿄 특파원

일본도 이사철이다. 골목 곳곳에 이삿짐 차가 서 있다. 판다가 그려진 차와 '0123'이 찍힌 차가 제일 흔하다. 업계 1등, 업계 2등 하는 회사 차다. 이 둘만큼 많진 않지만 개미가 땀을 뻘뻘 흘리는 로고도 종종 보인다. 업계 5등인 '아리상 마크노 힉코샤(アリさんマ―クの引越社)'란 회사다. 우리말로 풀면 '개미님 마크 이사 회사'인데 여기서 반년 전에 일이 터졌다.

직원 12명이 회사를 상대로 "돈 내놓으라"고 소송을 냈다. 자기도 끼겠다는 사람이 계속 늘어 34명이 됐다. 이들은 두 가지를 요구했다. 첫째, 그동안 이 회사는 이삿짐 옮기다 사고가 나면 사고 처리 비용 30~70%를 직원더러 물어내라고 했다. 이건 옳지 않으니 지금껏 가져간 돈을 돌려달라. 둘째, 미지급 야근비를 달라.

싸움이 붙으면서 묻혀 있던 일이 속속 불거졌다. 2006년 이 회사 이삿짐 차를 몰던 직원이 오사카 인근 고속도로에서 교통사고를 내고 숨졌다. 경찰이 조사해보니 사고를 낸 사람은 30시간 넘게 초과근무를 한 상태였다.

이 회사에는 '사내 저금'이라는 제도도 있었다. 겉으론 자유 가입이지만, 들지 않으면 윗사람이 불러 야단치고 그래도 버티면 인사에 불이익을 줬다. 사고를 낸 직원이 처리 비용을 다 감당하지 못하면, 회사는 이 돈을 헐어 나머지를 물게 했다. 그러고도 모자라면 직원들끼리 한 달에 1000~수천엔씩 붓는 '사우회' 돈에서 뗐다.

잘못을 저지른 직원의 얼굴을 프린트한 뒤 전국 지점에 붙여놓았다는 얘기도 일본 사회를 놀라게 했다. 직원 얼굴 밑에는 실수 내용과 함께 '일생 종 쳐요(一生棒に振りますよ)'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직원들은 자기네 일터를 '개미지옥'이라고 자조했다. 작년 10월 소송에 참여한 직원들이 회사 앞에서 데모를 했다. 직원들이 스피커로 "우리 얘기가 어젯밤 니혼TV에 보도됐다"고 했다. 간부가 달려와 "뭐라고 떠드는 거냐"고 윽박질렀다. 이 장면을 찍은 동영상이 유튜브 조회 200만 건을 넘겼다.

일본 사회가 분노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이 회사는 쓰노다 아사오(角田朝男) 창업주 부부가 1971년 트럭 한 대로 시작해 고도성장기에 급팽창했다. 자고 일어나면 인구가 늘던 시대였다. 하지만 호시절은 지나갔다. 1973년엔 한 해 850만 명이 이사 갔지만 지금은 이사 가는 사람이 한 해 500만 명에 턱걸이한다. 새로 솟는 신도시도 없고 팽창하는 공단도 없다. 이사 갈 일 없는 노인들이 인구의 주축이다. 새로 짓는 주택 수가 40년 전 190만 채에서 20년 전 160만 채, 현재 90만 채로 줄어들었다. 1조엔에 육박하던 이사 시장이 5000억엔 밑으로 반 토막 났다. '이삿짐 견적 사이트'까지 등장해 1엔이라도 싼 업체로 고객들을 몰고 갔다.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회사는 외부로는 저가 경쟁을 펼치고 내부에선 직원을 쥐어짰다. 업계 1~4등이 시장의 60%를 장악한 상황이라 업계 5등은 더 절박했다. 결국 터진 일이 이번 사태다. '개미님 마크 이사 회사'에서 진짜 뿔난 개미 직원들이 더는 못 참고 변호사를 찾은 것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이번 소송이 "개미들의 반란"이라고 썼다. 소송은 동종 업계로 번질 조짐이다. 우리에게도 닥칠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