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게가 제철이다. 훤칠하게 쭉 빠진 다리를 보면 바다가 얼마나 공을 들여 키웠는지 짐작할 만하다. 그 몸매만큼 가격도 만만치 않다. 강원 산골에서 나고 자란 나는 성인이 될 때까지 대게를 먹어 본 기억이 없다. 게라고 하면 그저 홍게(붉은 대게)가 전부였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대게에 대한 심정은 가질 수 없는 사랑을 꿈꾸는 그런 기분이다.
몸의 감각 기관으로 봄을 맞이한다면, 눈으로 맞이하는 봄은 단연 동백이 으뜸이다. 더러 매화를 꼽는 이도 있지만 흔하게 접할 수 있다는 점에서 동백을 따라오지 못한다. 뭐 겨울꽃이라고 우긴다면 할 말은 없다. 그러나 동백의 절정, 곧 제 스스로 목을 꺾어 자진하는 비장미는 봄이 아니고서는 보기 힘들다.
냄새로 만나는 봄에는 냉이나 달래가 있다. 소박하면서도 알싸한 향기는 보송하게 눈을 뜬 갯버들 꽃송이로 목덜미를 간질이는 듯한 봄볕의 촉각에 버금간다. 입으로 먹는 봄맛으로는 그저 대게가 그만이다.
시선을 사로잡는 시원스러운 모습에서부터 속이 꽉 들어찬 게살을 씹다 보면 겨울을 이겨낸 바다의 소리까지 더불어 맛볼 수 있다.
난데없는 수저까지 계급론으로 시끄러운 현실이다. 작금의 세태라면 대게는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족속일 것이다. 등딱지 화려하면서도 속살 새하얀 꽃게는 그다음. 하면 홍게는 흙수저쯤 될 것이다. 비유하자면 그렇다는 말이다. 홍게는 대게에 비해 식감이 조금 떨어지는 것 말고는 영양에서나 맛에서 차이가 없다. 그런데도 홍게라고 하면 선뜻 손 내밀기를 망설인다. 별난 미식가가 아닌 다음에야 '가성비'(?)에서 홍게가 더 낫다는 게 내 생각이다. 수저계급론이라는 것도 눈에 보이는 것으로 판단을 일삼아 온 우리들의 오류는 아닐까? 어떤 수저가 아니라 그 수저로 어떤 밥을 먹는가가 중요하다.
어느덧 3월이다. 실질적인 한 해의 시작이다. 1월과 2월 동안 충분한 워밍업을 했다면 이제부터는 힘껏 달려볼 일이다. 공연히 생산성 없는 일로 기운 빼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