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대표실 붉은 배경막에는 29일 '정신 차리자. 이러다가 한순간에 훅 간다'는 문구가 붙었다. 당 홍보기획본부에서 국민을 대상으로 공모한 '쓴소리' 중 하나다. '국민 말 좀 들어라' '알바도 너희처럼 하면 바로 잘린다' 같은 문구도 있었다. 그러나 이 자리에서도 지도부 간 충돌은 계속됐다. '현역 의원 40명 살생부' 파동 때문이었다. 김무성 대표가 "누구에게도 공천 관련 문건 또는 '살생부'를 얘기한 적이 없다"고 하자 서청원 최고위원은 "파동의 중심에 서 있는 김 대표가 죄송하다는 말씀을 안 한 것이 대단히 유감스럽다"고 했다. 이후 열린 의원총회와 긴급 최고위원회의를 통해 김 대표의 사과로 살생부 파문은 일단 봉합하기로 했지만 그 뒤에선 당내 친박(親朴)과 비박(非朴) 상호 비방이 계속됐다.

정치 원로와 전문가들은 "유권자들은 선거 때 그 정당이 얼마나 변화를 추구하고 국민을 잘 대변할 각오가 돼 있는지 그 절실함을 보는데, 지금 새누리당은 '웰빙' '오만' '무사안일'만 보인다"고 했다. 강원택 서울대 교수는 "여당이 이렇게 새로운 가치나 인물 없이 총선을 치르는 모습은 처음 본다"며 "마지막까지 당내 기득권 싸움만 벌인다면 총선 승리는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29일 오전 새누리당 최고위원회가 열린 대표실 배경판에 국민이 보낸 ‘쓴소리’가 적혀 있다. 당 홍보기획본부가 지난 23~26일 페이스북 계정을 통해 공모한 500여개의 글 중에 23개를 골라서 만들었다. ‘청년이 티슈도 아니고 왜 선거 때마다 버리십니까?’‘싸우면 표 안 준다 전해라’‘국민이 갑이요, 너희는 을이다’ 등이다. 조동원 홍보기획본부장은 “격려 메시지는 빼고 가장 뼈아픈 소리만 골랐다”고 했다.

새누리당은 그동안 야당이 분열되며 만들어진 '일여다야(一與多野)' 구도 덕에 쉽게 총선에 승리할 수 있을 것이란 계산에만 빠져 있었다. 김무성 대표를 비롯한 비박계에서는 "180석도 가능하다"고도 했다. 이런 '구도'만 믿고 국민이 어떻게 자신들을 보는지에 대한 성찰은 없었다.

친박·비박계는 더 많은 공천 지분을 챙기기 위한 이전투구(泥田鬪狗)에만 골몰했다. 친박계는 여권의 텃밭인 대구·경북 지역을 중심으로 청와대·내각 출신 인사들의 공천을 보장받기 위해 이른바 '진박(眞朴) 마케팅'에 전념했다. 후보들이 한 식당에 모여 '진박 인증 샷'까지 찍었고, '진박 감별사'까지 등장했다. 친박계 내부에서도 이들을 향해 "대통령 얼굴만 내세우지 지역과 나라를 위한 정책 경쟁에는 관심도 없고, 험한 지역에는 가려 하지 않는다"고 한다.

친박계가 여론의 비판대에 오르자 김 대표를 중심으로 한 비박계는 그 틈을 타고 현역 의원 기득권 지키기에만 전념했다. 지역구에 살지 않는 자기 쪽 사람들을 대거 당원으로 등록시켜 놓았다는 이른바 '유령 당원' 의혹이 나와도 덮기에만 급급했고, 신인 후보들이 "경선 룰이 현역들에게 너무 유리하다"고 하소연해도 "신인들 들어온다고 국회가 좋아지겠느냐"는 말만 했다. 김 대표는 '상향식 공천'이란 간판만 내걸고 현역에 유리하게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을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이번 살생부 파문은 이런 양 진영의 '밥그릇 싸움'에서 나올 수밖에 없는 예견된 재앙이었다. '살생부'와 관련해 누가 거짓말을 했든 집권 여당 전체에 대한 국민의 기대는 식어 가고 있다. 수도권 지역 출마자들은 "야당은 인물과 정책에서 파격과 절실함을 보여주는데 우리는 당 차원의 민생 의제 하나 없고 안에서 총질만 하고 있다"며 "중앙당 관련 뉴스가 나올 때마다 매일 몇천 표씩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