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냉동고 같았다. 29일 평창의 알펜시아 슬라이딩센터. 맨 아래쪽인 15번 커브에서 위를 올려다보니 스타트하우스는 육안으로 잘 보이지도 않을 만큼 까마득한 곳에 있었다. 새하얀 얼음 트랙이 끝없이 이어지는 듯했다.
실전 가동을 눈앞에 둔 이곳은 2년 뒤 2018 평창올림픽 썰매 종목이 개최되는 한국 최초 썰매 경기장이다. 전 세계에서 19번째이며, 아시아에서는 일본 나가노에 이어 두 번째다. 영하 10도 안팎의 혹한에도 현장 관계자들은 "격세지감"이라며 기쁜 표정이었다. 과거 아스팔트에서 훈련하고, 경기장이 없어 외국에서 대표 선발전을 치렀던 한국이 '꿈의 요람'을 갖게 됐기 때문이다.
평창조직위는 3월 3일부터 7일까지 닷새 동안 열릴 '사전 인증'을 앞두고 이날 경기장을 최초로 외부에 공개했다. 콘크리트 위에 얼음이 씌워진 트랙 곳곳은 그럴듯한 외형을 갖추고 있었다. 얼음을 깎고 손질하는 마무리 작업 중이었던 국내외 '아이스메이커' 30여 명은 "최고의 빙질을 만들겠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2010년 밴쿠버올림픽 직전 한 루지 선수가 훈련 도중 사망한 적이 있을 만큼 썰매는 위험한 스피드 종목이다. 시공사 대림산업 최태희 현장소장은 "썰매 경기장은 반드시 국제연맹의 사전 인증을 받아야 하고, 여기에 연습 레이스도 포함된다"고 했다. 정식 인증은 부대 시설 등 경기장 시설이 모두 완공(현재 공정률은 약 67%)되는 오는 10월로 예정돼 있다.
한국은 평창올림픽 썰매 종목에서 메달 2개 이상을 기대하고 있다. 조직위 봅슬레이·스켈레톤 담당 이익주 매니저는 "'홈 어드밴티지'를 누릴 수 있는 요소도 많다"며 "설계사인 독일 PBD사에 '맞춤 코스'를 주문했다"고 했다.
썰매 경기장의 총 길이는 2018m로 전 세계에서 가장 긴 편에 속했다. 그러나 실제 레이스에 활용되는 출발→도착점까지의 코스 길이는 1373m(봅슬레이·스켈레톤 기준)로, 2002 솔트레이크시티 대회 경기장(1335m)을 제외하면 2000년대 이후 가장 짧은 올림픽 경기장이다. 거리가 짧으면 스타트가 세계 최정상권인 한국 선수들에게 상대적으로 유리하다.
난코스도 곳곳에 숨어 있었다. 국내 연맹 관계자는 "국제연맹이 개최국 이외 국가의 선수에게 최소 40번 이상의 연습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는 규정을 두고 있다"며 "뒤집어 해석하면 40번만 기회를 주면 되는 것"이라고 했다. 반면 한국 선수는 수백 번 연습이 가능하므로 코스가 까다로울수록 유리해진다.
봅슬레이·스켈레톤을 기준으로 보면 경기장엔 16개의 커브가 있다. 선수들은 초반부인 6번 커브에서 일명 '헤어핀'(머리핀처럼 휘어진 코너)을 만난다. 한 대표팀 출신 관계자는 "이곳에서 급격한 곡선이 시작된다"며 "잔실수 없이 가속력을 유지해야 중반부에 힘을 낼 수 있다"고 했다.
레이스 막바지에 가속을 받아 곡선으로 유턴하는 모양인 12번 커브는 얼핏 보기에도 아찔하다. 원심력에 의해 2.34초가량 최대 4 G(중력 가속도의 4배)의 힘을 받는다. 시뮬레이션상 최고 속도(시속 130~140㎞대)가 나와 짜릿한 주행 사진 촬영이 가능한 곳도 바로 이 구간이다. 조직위 이준하 부위원장은 "이곳이 최대 승부처가 될 가능성이 크다"며 "컴퓨터 시뮬레이션상 전체 코스는 중상(中上) 난도 수준"이라고 했다.
이 밖에도 10번 커브에서 11번 커브로 이어지는 구간 등 이른바 '미로 코스'도 두 군데가 숨어 있었다. 멀리서는 직선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곡선인 구간으로 일종의 함정 코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