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29일에도 선거구 획정안을 처리하는 데 실패했다. 선관위는 253개 지역구 획정안을 국회에 보냈지만 야당들이 지난 23일 이후 일주일째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를 계속했기 때문이다. 29일은 여야 대표가 스스로 정한 처리 시한이었다. 하지만 야당은 이날 밤에야 뒤늦게 필리버스터를 1일 오전 중단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선관위가 재외유권자 명부를 3월 4일까지 작성하도록 법으로 정해져 있기 때문에 더 늦출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며칠 더 끌면 선거 연기가 현실화되거나, 어떻게 해서 편법으로 선거를 치르더라도 무더기 무효소송이 일어날 수 있었다.

테러방지법 처리를 막겠다는 야당의 필리버스터는 합법적 행위다. 정의화 국회의장이 '천재지변'이나 '국가비상사태'로 제한돼 있는 직권상정을 다소 무리하게 테러방지법에 적용한 것이 야당의 필리버스터를 부른 측면도 분명히 있다.

하지만 문제는 필리버스터가 선거법 처리까지 가로막고 있었다는 점이다. 야당에선 선거가 연기되는 한이 있더라도 테러방지법 처리는 안 된다는 주장까지 나왔었다. 법 하나 때문에 선거 연기를 들먹인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전시(戰時)나 비상시국도 아닌데 선거 일정을 손댄다면 국민 누구도 납득하기 힘든 일이었다.

야당 의원들은 최근 물고기가 물을 만난 듯한 표정으로 필리버스터를 선거에 이용하려는 꼴불견 작태마저 보였다. 일부 의원은 '신기록을 세우겠다'며 '발언 오래하기' 경쟁을 벌였다. 또 테러방지법과 전혀 관계없는 개인 소회나 밝히면서 눈물을 흘리는 모습도 보였다. 우리 사회 일각에서 관심을 보이자 마치 필리버스터가 다수 국민의 지지를 받는 것으로 착각한 것이다.

국정원의 권한 남용과 인권침해를 우려하는 야당의 주장도 완전히 무시할 수만은 없다. 과거 김대중 정권 때 국정원이 무차별 감청을 통해 그런 짓을 했다. 자신들이 그랬다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의심한 꼴이다. 대한변협은 이 법안이 국민 안전을 지키기 위해 타당한 내용이고 남용 소지도 없다는 의견을 냈다. 그렇다면 야당은 선거법과 함께 이 법안도 함께 통과시킨 뒤 조그만한 부작용이라도 발생하면 그때 가서 관련자를 엄벌하고 법안을 다시 들여다보는 것이 순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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