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송파구 거여동의 한 건물 5층에서 고시원을 운영하는 오모(64)씨는 지난달 25일 입주자들로부터 "방에 햇빛이 들어오지 않고 통풍도 되지 않는다"는 항의를 받았다. 이 건물 2층에 사무소를 차린 4·13 총선 예비 후보 A(여)씨가 고시원 건물 외벽에 대형 선거 현수막을 내걸면서 창문을 가린 것이다〈사진〉. A 후보가 내건 가로 12m, 세로 10m 현수막은 5층 건물의 2~5층 한쪽 면을 뒤덮었다.
오씨는 지난 11일 오후 6시쯤 A 후보 선거사무실을 찾아 "현수막을 철거해달라"고 따졌다. 이 과정에서 오씨와 A 후보 사이에 승강이가 벌어졌고, A 후보는 "오씨가 가슴을 두 차례 밀쳤다"며 경찰에 신고했다. 서울 송파경찰서는 오씨를 폭행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고 26일 밝혔다. 오씨는 "A 후보와 신체적 접촉은 없었다"면서 "선거 현수막이 입주자의 일조권(日照權)을 침해해도 막을 방법이 없다니 답답하다"고 했다.
20대 총선이 46일 앞으로 다가오면서 예비 후보들이 내건 대형 선거 현수막을 둘러싸고 곳곳에서 갈등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 19일엔 경기 안산의 한 웨딩홀 건물에 B 예비 후보가 대형 선거 현수막을 내걸자 웨딩홀 대표(63)가 현수막을 무단 철거한 일이 있었다. 현수막 때문에 햇빛이 들지 않아 결혼식 예약 취소가 잇따르고 있다는 이유였다.
경기 성남의 한 보청기 상점 주인(58)도 지난달부터 건물 3~5층을 현수막으로 가린 한 예비 후보에게 항의하는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공직선거법에 따르면 총선 120일 전 선관위에 등록한 예비 후보자는 입주자의 동의가 없이도 선거사무소가 입주한 건물에 현수막을 설치할 수 있다. 현수막 게시 절차나 크기·개수에 대한 별도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주민들이 일조권 침해로 민사소송을 제기할 수는 있겠지만 소송 결과가 나오기까지 1년 정도가 걸리고 위자료 액수도 크지 않아 실제 소송까지 간 사례는 거의 없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는 "예비 후보 등록을 할 때 각 지역 선관위에서 '현수막을 걸기 전에 입주자들을 충분히 설득하라'고 안내하지만, 잘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