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한 부부 사이에 있을 법한 자녀를 둘러싼 다툼이 조부모에게까지 번지고 있다. 주로 손자·손녀의 양육을 둘러싼 충돌이다. 일반적으로 부모가 이혼한 뒤 조부모가 손자녀를 도맡아 키우면서 생기는 문제들이다. 법조계와 학계에서는 조부모가 손자녀의 실질적 양육자일 경우 조부모에게도 부모의 권리를 인정해야 한다는 의견과, 법조문을 엄격하게 해석한다면 조부모는 권리 주체가 될 수 없다는 두 가지 의견이 맞서고 있다.

문제는 지난 11일 서울가정법원이 손자에 대한 외조모의 면접교섭권을 인정하면서 불거졌다. 손자를 키우던 외할머니(60)가 딸과 사별한 뒤 재혼한 사위를 상대로 손자를 만날 수 있게 해 달라는 소송을 제기하자 법원은 외할머니가 매월 첫째, 셋째 일요일 낮 12시부터 오후 8시까지 손자를 만날 수 있다고 판결한 것이다(조선일보 2월 23일자 A11면 보도). 이 판결은 조부모의 면접교섭권을 인정한 최초의 사례였으며, 이혼한 아들의 자녀를 키웠던 조부모가 며느리를 상대로 면접교섭권을 신청한 소송도 현재 서울가정법원에 계류 중이다.

면접교섭권은 부부가 이혼하거나 혼인이 취소돼 한쪽이 자녀를 양육하는 경우, 자녀를 키우지 않는 쪽이 정기적으로 자녀를 만나거나 연락을 주고받을 권리다. 원칙적으로 부모에게만 인정되는 권리다. 법무법인 강남의 양수연 변호사는 "부모의 권리를 확대해 조부모에게까지 인정한 이번 판결은 매우 이례적인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래픽= 이철원 기자

'조부모 양육권' 법적 다툼 잇달아

조부모가 손자녀를 키우면서 드는 양육비를 둘러싼 법정 싸움도 일어나고 있다. 서울에 사는 한 할머니(75)는 지난 2010년 딸 부부가 합의 이혼을 하면서 딸(48)을 대신해 외손녀(14)를 키웠다. 이혼 전에도 가게를 운영하며 맞벌이를 하는 딸 부부 대신 손녀를 돌보곤 했지만, 이혼 후엔 전적으로 손녀를 맡게 된 것이다. 이혼 후 딸은 매달 35만원, 사위는 30만원을 양육비로 보내왔다. 그러던 중 2015년 1월부터 딸이 양육비 송금을 중단했다. 기초노령연금으로 생활하던 할머니는 생활이 어렵다며 전화로 딸에게 양육비를 요청했지만, 딸로부터 "그런 식으로 독촉하면 양육비를 줄 수 없다"는 소리를 들었다. 딸은 전화번호를 바꾸고 일절 연락을 끊었다. 참다못한 할머니는 그해 5월 딸을 상대로 양육비를 달라고 청구했다. 조부모가 자식에게 밀린 손녀 양육비를 달라고 청구한 것이다. 법원은 지난 10월 딸에게 이제까지 밀린 양육비 245만원을 일시에, 장래 양육비로 매달 50만원을 지급하라며 할머니의 손을 들어줬다. 소송을 승소로 이끈 여성가족부 양육비이행관리원 법률지원팀 노지선 변호사는 "실제로 아이를 키우는 조부모에게 법원이 양육비 채권자 지위를 인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혼한 자녀의 자식들에 대한 직접 권리자가 되기 위해 후견인 신청을 하려는 경우도 있다. 작년 한국가정법률상담소에는 이혼한 아들의 7살과 10살짜리 아이들을 대신 키우던 친할아버지(73)가 가출한 아들과 연락이 잘 안 돼 아이들이 전학 등 수속을 하기가 어렵다며 자신이 후견인으로 지정받을 수 있는지 문의해왔다. 또 이혼한 딸의 손녀(11)를 데리고 살던 외할머니가 친권자인 아버지 대신 자신을 후견인으로 지정하는 방법을 상담하는 경우도 있었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 박소현 법률구조부장은 "조부모들이 손자녀에 관한 문제를 두고 법률 상담 요청을 하는 경우만 일주일에 3~4건에 달한다"고 말했다.

"민법 엄격히 해석하면 판단 다를 수도"

대법원에서 조부모의 면접교섭권 소송을 어떻게 판단할지는 미지수다. 현행법 명문상 부모와 자녀 이외에 다른 사람을 권리 주체로 인정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민법 837조는 "자녀를 직접 양육하지 않는 부모 일방과 자녀는 서로 면접교섭을 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고 면접교섭권을 규정한다. 엄격히 해석하면 조부모의 권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양육비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조부모나 이모, 삼촌 등 다른 친족에겐 권리가 없다. 이를 근거로 법원은 이전까지 부모 이외의 소송 당사자에게 권리를 인정하지 않았다.

지난 2014년 사위를 상대로 외조모가 소송을 제기한 적이 있었다. 딸이 2010년 암으로 사망하자 외할머니(65)가 외손녀(9)를 4년간 홀로 양육해왔다. 4년간 자신의 딸 얼굴을 보러 오지도 않던 사위(41)가 그 사이 재혼해 손녀를 데리고 가자, 외할머니는 사위의 친권을 빼앗고 자신이 손녀를 계속 키우게 해달라며 법원에 청구했지만 패소했다. 일주일에 몇 시간만이라도 아이를 볼 수 있게 해달라고 했던 면접교섭권도 기각당했다.

지난 2009년 정신질환이 있는 딸 대신 외손녀(당시 9세)를 돌보던 외조부모가 이혼한 사위를 상대로 면접교섭권을 청구한 사건도 있었다. 이혼 과정에서 전 사위에게 양육권이 돌아가자 아픈 딸 대신 외조부모가 수년간 양육비를 보내고 있었지만, 손녀를 만날 수 없었다. 어떻게 크는지 전혀 몰라 얼굴만이라도 보여달라고 면접교섭권을 청구했지만 기각당했다.

학계 일각에선 부모의 권리를 임의로 조부모 등 친족에게 인정한다면 가정에 대한 부당한 개입이 생기거나 자녀에 대한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판결이 아니라 그 자격과 요건을 법률에 상세히 규정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서울가정법원 한 판사는 "재판부가 법을 어떻게 해석하는지에 따라 재판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조부모를 양육자로 인정해야" 목소리도

현실을 반영해 손자녀의 실제 양육자가 조부모일 경우 그의 지위를 부모만큼 확대·인정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법원 가사상담위원 강은숙씨는 "이혼 중이거나 이혼을 한 부모의 거의 모두가 원(原)가족, 즉 조부모로부터 육아 도움을 받는다"고 말했다. 이혼을 한 부모가 별거를 하게 되면 부모 중 한 명이 자녀를 키우게 되는데 이 경우 대부분이 직장생활 등을 이유로 조부모가 양육을 돕기 때문이다. 강씨는 "직접 소송의 당사자로 조부모가 나서는 경우는 드물지만 다툼이 되는 사안을 한 꺼풀 벗겨보면 모두 조부모들이 며느리나 사위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것"이라며 "조부모는 더 이상 양육 보조자가 아니라 주(主) 양육자"라고 말했다.

법원도 조부모를 주 양육자로 인정한 적이 있다. 지난 2014년 외할아버지 백모(74)씨와 외할머니 권모(71)씨는 딸이 이혼한 뒤 외손녀(당시 14세)를 맡아 길렀다. 맞벌이였던 딸 부부는 이혼 전에도 외손녀를 백씨 부부에게 맡기는 일이 잦았고 딸이 이혼하면서 친권과 양육권을 갖게 됐다. 백씨 부부는 딸과 전 사위가 양육비로 보내주는 80만원으로 외손녀를 키웠다. 그러나 딸과 전 사위는 자식을 보러 오지도 않았다. 그러다가 딸과 전 사위에게 각각 연인이 생겼고 매달 보내던 양육비도 언젠가부터 끊겼다. 백씨 부부는 "자식을 챙기지 않는 딸과 전 사위가 괘씸하다"며 법원에 양육비 미지급에 따른 이행명령을 청구했다. 서울가정법원은 백씨 부부가 전적으로 외손녀를 키운 사실을 인정해 딸과 전 사위에게 밀린 양육비를 강제하기 위해 백씨 부부가 이들 재산을 압류하거나 양육비를 주지 않을 경우 감치 명령을 신청할 수 있다는 결정을 내렸다.

아동의 복지가 최우선 판단 근거

전문가들은 법을 해석할 때 아동의 복지를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삼성서울병원 소아정신과 정유숙 교수는 "조부모가 전적인 양육자 역할을 하는 경우 아동의 1차적 애착 대상은 부모가 아니라 조부모가 되는 경우가 많다"며 "그럴 경우 양육자가 바뀌어 주 양육자와 아동의 관계가 갑자기 단절되면 아동은 자신이 버려졌다는 생각을 하게 돼 트라우마가 남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조부모가 아동의 전적인 양육자라면 아동이 이혼과 별거 등을 이해할 수 있는 나이가 될 때까지는 조부모로부터 물리적·심리적으로 분리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판결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법 자체를 개정해 조부모에게도 손자녀에 대한 권리를 주자는 의견도 있다. 한국여성변호사회의 박현화 총무이사는 "판례에 그칠 것이 아니라 법 개정을 통해 실제 양육자인 조부모의 지위를 인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지난해 10월 새누리당 신의진 의원은 자녀의 조부모, 형제·자매, 그 밖에 상당한 기간 자녀의 양육을 담당했던 친족의 경우 가정법원의 허가를 받아 자녀와의 면접교섭이 가능하도록 현행법을 바꾸자는 내용의 민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면접교섭권 조항이 개정되면 다른 조항들이 유추해석될 가능성도 있다.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의 신영호 교수는 "자녀의 복지가 최우선이 되는 쪽으로 해석해야 법의 취지에 맞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