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유인태 의원은 그제 밤 임수경을 비롯한 몇몇 의원에게 저녁을 샀다. 그 스스로 공천에서 배제돼 속이 쓰렸겠지만 다른 탈락 의원들부터 챙겼다. 그는 당 공천관리위로부터 '물갈이 대상'으로 통보받자 곧바로 받아들였다. "삶에서 물러날 때를 아는 것이 소중한 가치라고 생각해 왔다"고 했다. 어제는 이렇게 말했다. "지금 19대 국회가 마지막이라 생각했지만 당이 어려운 처지라 좀 미적거리다가 이런 꼴을 당했다." 스스로 물러날 때를 놓쳤다는 후회다.

▶그는 유난히 사연 많은 정치인이다.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사형선고를 받았다. 노무현 정부 청와대 정무수석 땐 특유의 입담으로 '엽기 수석'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수석비서관 회의를 하며 대통령 앞에서 졸기 일쑤였다. 그러고는 "졸면서도 다 듣고, 생각하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졸음에서 깨어나 맥락 맞는 얘기를 하는 것을 보면 아주 틀린 말은 아닌 듯했다. 그는 바둑부터 당구까지 갖은 '잡기'에도 능한 풍류객이었다.

▶함께 컷오프 대상에 오른 문희상 의원은 우락부락한 외모와 달리 정국을 꿰뚫어보는 안목이 탁월했다. 그래서 "겉은 장비, 속은 조조"라고들 했다. 문 의원 방은 정치부 기자들의 '봉숭아 학당'이었다. 명쾌한 시국 분석을 얻어 들으려는 기자들로 늘 붐볐다. 그는 1997년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된 날 아버지 무덤에서 한 시간을 펑펑 울었다. 보수적인 아버지는 아들의 정치 행로를 못마땅해했지만 결국 열성적인 후원자가 됐다고 한다.

▶문 의원은 "정권 교체로 내 꿈을 이뤘고 그 이후는 덤으로 사는 것"이라고 말하곤 했다. 그러면서 비상대책위원장 포함해 당 대표를 세 번 지내며 당이 위기를 맞을 때마다 구원투수 역할을 했다. 문 의원은 노무현 정부 청와대 초대 비서실장을 지내 유 의원과 함께 친노(親盧)로 분류됐다. 하지만 두 사람은 여야 가리지 않고 "괜찮은 정치인"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이념에 얽매이지 않아 상대 당은 물론 시민사회, 재계까지 두루 말이 통했다.

▶두 사람은 야당이 극단에 빠지지 않고 합리적 선택을 하도록 이끌려고 애썼다. 이런 야당 중진들마저 명예롭지 못하게 퇴장시키는 것이 우리 정치 현실이다. 적어도 미리 본인들에게 알려 모양새를 갖추는 예우를 할 수는 없었을까. 유인태 의원은 그런 아쉬움마저도 중진들 스스로 정치를 잘못 한 탓으로 돌렸다. "씁쓸하긴 하지만 우리가 자초한 일이니 자업자득인 셈"이라고 했다. 지금 야당에 꼭 필요한 사람들까지 떠나는 것 같아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