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 의원들은 23일에 이어 24일에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테러방지법 통과 저지를 위한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를 이어갔다. 새누리당은 "토론의 장이 야당 강경파 의원들의 총선 선거운동에 악용되고 있다"고 했지만, 야당은 "테러방지법의 인권침해 우려 조항을 막아내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가장 먼저 발언한 더불어민주당 김광진 의원은 23일 저녁 7시 6분부터 자정을 넘긴 12시 39분까지 5시간33분 동안 쉬지 않고 연설했다. 1964년 국회의원이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 동료 의원의 구속동의안 통과를 막기 위해 단상에 서 있었던 5시간 19분의 기록을 깬 것이다. 김 의원이 연설 후반부로 가면서 힘들어하자, 의원석에 앉아 있던 더민주 의원들이 "10분만 더 해"라고 소리치기도 했다.

은수미(오른쪽)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4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테러방지법 통과 저지 무제한 토론을 하는 가운데, 새누리당 김용남 의원이 “안건과 다른 얘길 하면 안 된다”며 항의하고 있다.

하지만 김 의원 기록은 몇 시간 뒤 같은 당 은수미 의원에 의해 깨졌다. 은 의원은 새벽 2시 30분부터 낮 12시 48분까지 10시간 18분간 발언했다. 은 의원이 단상을 내려오면서 비틀거리자, 강기정·윤호중·김현·임수경 의원 등은 다가가 "수고했다"고 한마디씩 했다. 필리버스터를 밀어붙인 이종걸 원내대표도 은 의원을 안았다. 김광진 의원이 연설을 끝냈던 새벽에도 최재성 의원 등이 본회의장을 지켰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야당 관계자는 "모처럼 친노(親盧) 주류들이 다 모였네"라고 했다. 김 의원과 은 의원 사이엔 국민의당 문병호 의원이 1시간 49분간 연설했다. 은 의원 다음 차례였던 정의당 박원석 의원은 9시간30분간 발언했다. 이날 각종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는 김광진, 은수미, 박원석 등이 검색 순위 10위권 안에서 오르락내리락했다. 이들은 오래 연설을 하기 위해 법 조문, 500쪽이 넘는 논문 등을 준비해 그대로 읽었다.

더민주는 이날 반대 토론을 이어가면서도 "테러방지법 자체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는 논평을 냈다. 이언주 원내대변인은 "감청·도청 등 무차별적으로 국민을 감시하고 인권을 유린하겠다는, 반헌법적 독소 조항만 제거하라는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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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해 새누리당은 "야당이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고 했다. 김용남 의원은 은 의원이 발언할 때 "그런다고 공천 못 받아요"라고 소리치기도 했다. 은 의원은 "명예훼손"이라고 맞받았다. 새누리당 의원들은 야당 의원들이 테러방지법과 상관없는 복지·노동 문제 등에 대한 얘기를 하면 세게 항의했다. 박원석 의원이 국정원 댓글 사건을 거론하며 "박정희 독재"란 표현을 썼을 때도 반발했다. 김무성 대표는 "야당에 마이너스"라고 했다. 본회의장에 앉아 있다가 나온 조원진 원내수석부대표는 "나온 사람들 지역구에서 다 어려운 거 아니냐. 완전 자기 선거운동 하는 것"이라고 했다. 더민주 김광진·은수미 의원은 비례대표로 이번 총선에서는 각각 전남 순천·곡성과 경기 성남 중원에 공천을 신청했다. 비례대표인 정의당 박원석 의원도 경기 수원 영통에 출마했다. 새누리당 원유철 원내대표는 이날 당 회의에서 김 의원이 전날 밤 토론 도중 순천 시민들에게 "DJ처럼 결연히 임하고 있다"는 문자메시지를 보낸 것을 언급하며 "진정성이 있느냐. 국민의 생명을 선거의 도구로 활용하고 있다"고 했다. 은수미 의원은 이날 발언을 시작하면서 자신을 "성남 중원 예비후보"라고 소개했다.

새누리당은 야당의 필리버스터를 가능하게 한 국회선진화법의 개정 필요성을 다시 강조했다. 김무성 대표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이게 바로 국회선진화법이다. 얼마나 큰 망국법인지 지금 체험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원유철 원내대표도 "선진화법 통과로 47년 만에 도입된 필리버스터의 첫 작품이 바로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기 위한 테러방지법 저지"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