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호학자이자 중세학자였던 움베르토 에코가 84세로 세상을 떠났다. "남들은 50세가 되면 가족을 버리지만, 나는 잔인한 살인 사건이 벌어지는 중세기 수도원 이야기를 쓰기로 했다"던 그는 '장미의 이름'을 시작으로 '푸코의 진자' '프라하의 묘지' 같은 세계적 베스트셀러를 쓰기도 했다.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에코의 첫 작품 '장미의 이름'은 소설인 척하는 철학책이다. 중세 스콜라 철학에서 가장 큰 문제는 보편성이었다. 고양이, 사각형, 행복, 평화. 우리는 다양한 개념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수백 종의 다양한 고양이만이 아니라, 뛰어다니고 앉아 있는 고양이 모두 다르게 생겼다. 우리가 원하는 평화와 중국이 추구하는 한반도의 평화 역시 본질적 차이가 있어 보인다. 그렇다면 개념의 보편성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플라톤은 모든 개념은 이데아 세상에만 존재하는 완벽한 개념의 그림자라는 실념론(realism)을 주장한 바 있다. 반대로 아리스토텔레스는 개념은 인간의 경험을 통해 만들어지기에, 개념의 유일한 보편성은 그들 간의 동일한 이름뿐이라는 유명론(nominalism)을 제시했다.
에코는 지극히 유명론적인 메시지를 남겼다. 어차피 그 아름다웠던 장미가 남기는 것은 장미라는 이름뿐이다. 현실적 검증 없는 개념은 무의미하지만 인간은 다양한 이데올로기의 이름을 위해 서로를 죽이고 학대한다. '장미의 이름'에서 범인은 단 하나뿐인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2편'의 존재를 숨기기 위해 수많은 사람을 살인한다. 웃음과 유머를 허락하지 않는 중세 철학과는 달리 시학 2편에서의 아리스토텔레스는 코미디의 중요성을 주장하니 말이다.
보이지도 증명할 수도 없는 이데올로기를 위해 웃음과 행복을 무시하는 나라. 아니면, 개인이 직접 체험할 수 있는 행복과 나라의 안보를 우선으로 하는 대한민국. 실념론적인 한국과 유명론적인 한국. 우리는 어떤 '장미의 나라'에 살고 싶어 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