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이번 총선에 하겠다는 '국민 공천'의 원조(元祖)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국민 참여 경선을 거쳐 대통령이 된 노 전 대통령은 국회의원도 상향식(上向式)으로 공천해야 한다는 신념이 누구보다 강했다. 그는 "보스와 계보를 배격하는 상향식 정치 개혁이야말로 내 선거 공약의 절반"이라고까지 했었다.
이런 정신에 따라 열린우리당은 국민과 당원이 참여하는 상향식을 공천의 기본 원칙으로 삼았다. 2004년 총선에서부터 80여곳에서 상향식 경선이 이뤄졌다. 내친김에 2005년엔 본격적인 실험이 이뤄졌다. 의원이 지역위원장(당협위원장)을 맡지 못하도록 하는 방안이 추진된 것이다. 중앙당에서 당권과 대권을 분리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대선에 나갈 주자는 대선 1~2년 전 당권을 내려놓아야 한다. 주자들 간 공정 경쟁을 위해서다. 각 지역 국회의원 선거도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본 것이다.
열린우리당의 상향식 실험은 실패했다. 실험 자체의 문제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외부 요인이 컸다. 당 지지율 폭락과 잇단 선거 참패로 상향식 실험을 이끌고 갈 동력이 소진됐다. 2007년 당 간판을 내리면서 실험은 막을 내렸다. 하지만 상향식에 대한 진지한 접근은 평가해줄 만 하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나 이번엔 새누리당이 상향식 실험을 하고 있다. 김무성 대표가 전도사를 자처하고 있다. 그런데 10년 전 노무현의 실험과 비교해보면 '프로세스'가 이상하다. 노무현의 실험은 '현역 의원 기득권 제한→상향식 경선'의 과정을 밟았다. 그런데 지금 새누리당은 '현역 기득권 제한'이란 과정이 생략된 채 상향식 경선으로 바로 직행하고 있다.
새누리당은 작년에 '국회의원 선거에 나서려면 당협위원장직을 6개월 전에 내놓아야 한다'는 규정 초안을 만들었다가 폐기했다. 그러자 "의원이 기득권을 먼저 내려놓지 않으면 상향식 경선은 현역 기득권을 지켜주는 수단에 머물 것"이란 우려가 당 안팎에서 쏟아졌다. "김무성 대표부터 당협위원장을 던지라"는 요구도 있었다. 하지만 새누리당은 귓등으로 들었다. 새누리당 현역 의원들은 지금까지 지역 조직을 거머쥔 채 알차게 선거운동을 해왔다.
신인을 위한 배려는 없었다. 있다면 여성과 장애인에 한해 공천 심사비 100만원을 면제해준 게 고작이다. 경선 날이 다가오자 신인들은 비로소 실감했다. 현역에 맞서 제대로 서 있기도 버거울 정도로 운동장이 심하게 기울어져 있다는 것을.
상향식 공천은 우리 정당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맞다. 옳은 길이다. 하지만 현역의 기득권을 제한하고 신인과 공정한 경쟁이 이뤄지는 제도가 만들어진 다음에 갈 길이다. 10년 전 상향식 실험을 한 노 전 대통령은 비록 실패했을지언정 실험이 제대로 되려면 무엇이 우선되어야 하는지는 알았다. 그런데 10년이 지나 다시 실험하겠다고 나선 김 대표가 그걸 몰랐을까.
김 대표는 최근 "상향식 공천을 건들지 마라"며 책상을 내리치기까지 했다. 하지만 적어도 6개월 전 "우리가 기득권을 내려놓아야 한다. 그래야 명분이 있다"며 먼저 현역들을 설득했어야 했다. 신인과 현역 간 평평한 운동장을 마련하지 않고 벌이는 상향식 경선은 현역 기득권을 지켜주는 '기만극'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