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의영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

젊음이 눈부시다는 말을 이제야 알 것 같다. 체력, 지력, 인내력 저하를 진하게 느끼게 되면 당혹스럽다. 인생처럼 유한하지는 않지만 경제도 노화한다. 투자할 곳이 줄어들고, 복사할 선진국 기술이 소진되고, 인구도 노령화한다. 경제성장률이 10%를 오르내리던 1960~80년대 한국경제는 눈부신 젊음이었고 5~6%를 들락거리던 90년대와 2000년대 전반은 중년기였다. 그러던 한국경제가 2008년 세계금융위기 이후 3% 성장도 힘겨워하고 있다.

퇴행성 질환인지 급성 질환인지, 우리 탓인지 남의 탓인지 분명치 않다. 가계부채가 급증하고, 주력 산업에서 기업 수익률이 급감하고 한계기업이 증가하고 있다. 소비와 투자 회복은 기대 난망이고 금융불안 방지가 더 급해졌다. 바깥도 마찬가지다. 선진국 회복세는 미약한데 중국 불안이 거품 낀 선진국 금융시장을 흔들면서 국제금융시장까지 요동하고 있다. 내수 침체를 상쇄해주던 수출이 역할을 바꾸어 오히려 경제침체를 리드하는 현상도 심화되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평정을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성장률 저하의 상당 부분은 어쩔 수 없는 노화의 결과라는 것을 인정하고 이를 급성질환의 증상과 분리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지난 정부 때는 우리 경제가 6~7% 성장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가 불과 몇 년 뒤 한국 경제가 절벽 위에 있다고 외치는 이유는 바로 이런 자세가 돼 있지 않은 탓이다.

자연적인 성장률 저하를 정치적 목적이나 특정 정책 추진에 이용하는 것도 혼란을 가중시킨다. 우리 성장률이 세계 성장률에 미달하는 일이 노무현 정부 때 관찰되더니 최근 5년간 반복되고 있다. 다음 대선엔 야당이 경제성장률 하락을 이유로 '잃어버린 10년'이라 부르는 일이 생길지 모른다. 그러나 크게 보아 성장률 저하는 어느 정부의 잘못도, 지금의 국회 탓도 아니다. 세계 성장률은 각국의 성장률을 가중 평균해서 계산한다. 그런데 초고속 성장을 하는 중국과 인도의 가중치가 20%를 넘고 개발도상국의 가중치가 거의 50%에 이른다. 더구나 세계 인구는 매년 1% 넘게 증가하고 있는데 한국의 인구증가율은 0%로 가고 있다. 성숙한 우리 경제의 성장률이 세계 성장률에 0.5% 미달하는 것은 그리 충격적인 사태가 아니다. 우리 경제만 특별히 조로(早老) 현상을 겪고 있다고 할 수도 없다. 우리 경제는 세계 최장이라 할 수 있는 30년의 청년기를 누렸다. 한국의 소득 수준에 도달했지만 우리보다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경제는 몇몇 산유국이거나 대규모 민족국가들은 흉내 내기 힘든 소수의 섬나라뿐이다. 왕년의 금메달을 껴안고 분노하거나 좌절할 상황이 아니다.

고단한 현실을 참아가며 도(道) 닦는 흉내나 내자는 얘기가 아니다. 급성질환이 의심되면 국제금융시장이 용인하는 범위에서 최대한의 경기부양이 필요하다. 그러나 3%대 성장하는데도 가계부채 증가를 부추겨 부동산 가격을 띄워 도리어 일본화 가능성을 증가시키고 부실산업의 구조조정을 뒤로 미루는 것은 피해야 한다. 2%대 성장률을 보고 패닉에 빠지는 것도 금물이다. 혁신경제와 구조개혁의 목적은 회춘이 아니라 2%대의 성장률을 앞으로 오랫동안 유지하는 것이다. 선진국들은 후발 공업국에 따라잡히고 노령화가 진행되는 이중고 속에서 '1인당 국민소득 증가율 2%'를 장기간 유지함으로써 현재 위치에 도달했다. 우리 경제도 앞선 이들의 성공과 실패를 배워야 노년기 우울증과 체력 저하를 떨칠 수 있다. 그래야만 정상이 시작되는 급경사에서 주저앉지 않고 무거운 발걸음이나마 내디딜 수 있다.

※ '경제초점' 은 이번 회부터 송의영 교수가 맡습니다. 서울대 경제학과 졸. 하버드대 경제학 박사. 미 밴더빌트대 조교수와 금융위 금융발전심의회 위원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