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대치동 학원가. 영하의 기온 만큼 거리는 썰렁했다. 겨울방학 특수는 실종된 듯 보였다. 특히 영어학원에 드나드는 발걸음이 눈에 띄게 줄었다. 이곳에서 10년 이상 영어를 가르쳤다던 한 강사는 "요즘 영어학원에 다니는 학생이 크게 줄었다"며 "지난해 2018 대학수학능력시험 영어 절대평가 확정 발표 이후 학원가가 더욱 얼어붙었다"고 했다.

◇전통적인 개념의 어학원은 퇴조

특히 실용영어나 공인어학시험을 겨냥한 학원의 하향세가 뚜렷하다. 미국교과서를 활용해 초등생 수업을 진행하는 A, B어학원은 재원생 규모가 예전 같지 않다. 중 1, 초 5 자녀를 둔 임수련(가명·41·서울 서초구 서초동)씨는 "정보가 빠른 학부모들은 아이가 초등 고학년만 돼도 미국교과서로 공부하는 학원에 보내지 않는다"며 "두 자녀 모두 재작년부터 학교 내신에 대비할 수 있는 한국식 문법 학원에 보내고 있다"고 했다.

토플을 가르치는 C어학원도 마찬가지다. 2000년대 후반 중고생 재원생만 2000명에 가까웠지만 점점 학생 수가 줄어들었다. 중 1 딸을 이 학원에 보내고 있는 김유나(가명·45·서울 강남구 대치동)씨는 "5~6년 전보다 학원 규모가 굉장히 작아졌다"고 말했다. "여섯 살 터울의 큰아들이 중학생 때 이 학원에 다니며 민족사관고등학교에 진학했어요. 리딩(reading)과 라이팅(writing)을 주로 가르치며 토플(TOEFL)을 준비해줘 몇 년 전에는 인기가 굉장히 많았죠. 하지만 수능 영어 시험이 쉽게 출제되고 절대평가로 전환하는 발표가 있고 나서 학생들이 점점 빠져나갔습니다. 입시에 아주 높은 영어 능력이 필요 없다는 뜻이잖아요. 전반적으로 영어 실력을 높이기 위해 둘째도 이 학원에 보내지만 다음 방학에는 수업을 줄일 예정이에요. 대신 내신에 필요한 문법 수업을 보충할 계획입니다."

학생들은 실용영어, 공인어학시험을 준비하는 어학원을 더 이상 찾지 않는다. 사교육이 성업하는 겨울방학이 무색했다. 한국식 문법 교육을 강조하는 영어학원만 인기를 끌고 있다. 입시에서 내신의 중요성이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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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신 대비 강조하며 학생 유치

요즘 학부모에게 인기 있는 영어학원은 내신 준비에 특화된 곳이다. 최선어학원은 10년 이상 한국식 문법 시험을 대비하는 데 중점을 뒀다. 비교적 오랜 시간 대치동 인근 중·고교에 맞춤한 내신 강의를 제공한 셈이다. 윤훈 최선어학원 이사는 "'내신에 강하다'는 이미지 덕에 이번 겨울방학에도 학원의 성장세가 이어졌다"고 했다. 윤 이사는 "대치동 외 다른 지역에서도 내신의 중요성이 커지는 것을 인지하면서 송파캠퍼스 등에서 인기가 더욱 높아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수능 강의를 전문으로 하던 이강학원도 내신 강의 비중을 늘렸다. 이강현 이강학원 원장은 "요즘 내신 대비를 해주지 않으면 학원가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고 말했다. "대치동 인근 10여 개 고교 내신을 모두 봐줄 수 있습니다. 한편 중소형 규모의 학원들은 다양한 학생들의 수요를 충족할 수 없습니다. 강사와 강의실이 부족하기 때문이죠. 학원계에서도 규모의 경제가 통하는 셈입니다."

주목할 점은 내신 대비하는 연령대가 점점 어려진다는 것. 상위권 내신 대비가 강점인 KNS 어학원은 이번 겨울방학에 재원생이 10%가량 늘었다. 김치삼 KNS어학원장에 따르면 약 500명인 초등 고학년 재원생 중 4~5학년의 비율이 40%까지 늘었다. 기존에는 20~30% 정도였다.

정세진(가명·41·서울 강남구 대치동)씨는 중 1, 초 3 두 자녀를 두고 있다. 첫째는 동네에 있는 소수 정예 내신 대비 학원에 다니며 올해 4학년이 되는 둘째도 같은 학원에 보낼 계획이다. 정씨는 "지난해에도 둘째를 내신 대비 학원에 보내려고 생각했었다"며 "이제야 내신 대비를 시키는 게 대치동에서는 일반적인 경우가 아니다"라고 했다. 이주현(41·서울 강남구 대치동)씨는 "영어 문법 진도를 빠르게 나가는 학원들이 요즘 인기"라며 "(수능에서 영어의 영향력이 줄어도) 영어를 빨리 끝내려고 하지 영어학원에 안 보내는 엄마들은 드물다"고 말했다.

◇커리큘럼 재편성으로 돌파구 모색

영어학원들은 원생을 끌어모으기 위해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초중생에게 실용영어능력을 길러주는 '이보영의 토킹클럽'은 올해 마케팅 전략을 세울 때 입시 전문가의 조언을 참고했다. 조미정 김영일교육컨설팅 교육연구소장이 지난해 연말 두 차례 세미나를 진행하며 학부모들의 니즈를 전했다. 장승은 이보영의 토킹클럽 교육이사는 "실용영어교육과 입시를 연결 지어 학부모 설명회에서 소개했더니 당일 등록하는 학부모들이 이전보다 늘었다"고 말했다.

한 대형 프랜차이즈 어학원 관계자는 "영어교육 정책의 변화가 커 어학원들이 학원생 이탈을 막기 위해 커리큘럼을 재편성하는 등 노력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