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비대위 대표는 연일 안보·경제 등에 있어 기존 야권과 다른 생각을 피력하고 있다. 평소 같으면 가만있을 리 없는 당내 친노(親盧)·강경파들은 입이라도 맞춘 듯이 조용하다. 야당 관계자들은 "평소 같으면 정체성 논쟁으로 난리가 났을 텐데 이상하게 조용하다"며 "가장 큰 이유는 공천받을 때까지는 눈치를 봐야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김 대표는 지난 17일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 역시 재벌 중심의 성장 정책에 의존해 경제를 어렵게 했다"며 전직 대통령들을 공개 비판했다. 지난 9일 군부대에서 '북한 궤멸' 발언도 했고, 햇볕정책의 '현대화와 보완'까지 언급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경제 민주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고도 했다. 김 대표가 데리고 온 주진형 한화투자증권 대표는 "구조조정이 뭐가 문제냐"고 했고, 김현종 전 통상교섭본부장은 "개성공단을 폐쇄할 수도 있어야 한다"고 하는 등 보수 성향 발언들만 나왔다. 모두 기존 야당의 정체성을 건드리는 발언들이지만 이를 지적하고 나선 당내 인사는 거의 없다. 신정훈(전남 나주·화순) 의원이 19일 김현종씨 영입에 대해 "당 차원의 해명이 필요하다"고 언급한 것이 전부다.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9일 국회에서 열린 20대 총선 여성 예비후보자 발대식 및 전진대회에서 여성 후보들과 승리의 V자를 그려 보이고 있다.

더민주 의원들의 '이상한 침묵'은 우선 두 달 앞으로 다가온 총선 때문이다. 공천의 칼을 쥐고 있는 김 대표에게 섣불리 맞섰다가는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김 대표는 공천관리위원회(지역구)와 비례대표후보자추천위를 일원화해 자신의 공천 권한을 대폭 강화했다. 한 수도권 재선 의원은 "민감한 시기에 '칼자루'를 쥐고 있는 김 대표에게 까불었다가 무슨 꼴을 당할지 모른다. 다들 납작 엎드렸다"고 했다.

이들은 또 "김 대표가 선거 때 보수·중도적 목소리를 내는 것이 당 전체적으로 '좌우(左右) 조화'를 맞춰 선거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생각도 하고 있다. 기존 지지층에 중도·보수 성향의 유권자까지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윤호중 의원은 "햇볕정책을 업그레이드해야 한다는 김 대표 주장에 반대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김 대표의 보수 발언은 '북풍(北風) 방어용'이라는 분석도 있다. 야당 관계자는 "새누리당이 만든 '종북 정당' 프레임을 깨기 위해서라도 김 대표의 보수적 발언이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거기에 김 대표가 비대위원장을 맡은 후로 야당이 빠르게 안정세를 찾아간 것도 반발의 명분을 줄인 것으로 보인다. '싸움만 하는 야당' 이미지가 줄었다는 것이다. 한 초선 의원은 "선거를 앞둔 민감한 시기에 굳이 내분을 자초할 이유가 없다"며 "김 대표가 말은 그렇게 해도 무슨 정책이 크게 바뀐 것도 없지 않으냐"고 했다.

김 대표가 보수적 목소리를 내면서도 '경제 민주화'에서는 확고한 것도 분위기 잡기에 일조하고 있다. 서영교 의원은 "경제 민주화라는 가치를 살리기 위해 모셔온 분인데, 그 역할에 충실한 것 같다"고 말했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김 대표의 구원 등판으로 당이 안정되고 있는데, 거기에 반기를 들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동안 야당 내분(內紛)이 노선과 이념 차이와 함께 친노(親盧)·비노(非盧)의 계파 갈등 때문이었는데, 비노가 대부분 탈당했기 때문에 조용하다는 지적도 있다. 한 관계자는 "시끄러운 사람들이 다 나갔다"고 했다.

"어차피 김종인 대표는 총선 후에는 떠날 나그네"라는 인식도 있다. 더민주의 주인은 자신들이고, 김 대표는 선거를 위해 잠시 머무는 객(客)이라는 여유가 친노·강경파의 침묵 배경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초선 의원은 "불만이 왜 없겠는가. 일단 선거를 잘 마무리한 뒤에 냉정한 평가를 받아야 할 것"이라고 했다. 김 대표가 본격 '물갈이'에 나서게 되면 잠재했던 불만이 한꺼번에 폭발할 수도 있다. 야당 관계자는 "그런 갈등조차 유권자에겐 변화의 몸부림으로 비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