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여자는 22년간 200만 통의 편지를 읽으며 남의 삶을 들여다봤다. 지금도 매일 100통 가까운 편지를 읽는다. 그는 말한다.
"남의 인생은 멀리서 보면 아름답다. 자세히 보지 않으니 슬프면 슬픈 대로, 아프면 아픈 대로 아름다움이 있다. 그런데 가까이 들여다보면 대부분의 인생과 마찬가지로 미움과 원망, 편견으로 깨지고 갈라져 아름답지만은 않다. 그러나 한 번 더 들여다보면, 아름답지 않은 그 인생도 무언가를 품어 내고 길러 내고 키워 내고 있다. 누가 뭐래도 그것은 아름답다."
평범한 우리 이웃들의 애환을 소개하는 MBC 라디오 '여성시대' 작가를 1993년부터 맡고 있는 박금선(52)씨 이야기다. 그는 최근 '여성시대'에서 배운 것들을 '어떤 삶을 살든, 여자가 절대 포기하지 말아야 할 것들'이라는 책으로 엮어냈다.
청취자 편지에 묻어난 사회상
흰 눈이 펑펑 내린 지난 16일 서울 상수동 카페에 나타난 박금선은 천가방에서 자료부터 쏟아냈다. 표지에 역대 진행자 사진이 박힌 월간 '여성시대', 사연이 소개된 청취자에게 보내줬던 프로그램 녹음테이프, 청취자들이 보낸 편지 뭉치…. 박금선은 "내 이야기를 하러 나온 게 아니라 '여성시대' 이야기를 하러 온 거니까. 연세 드신 신문 독자들께 이런 걸 보여 드리면 친근감을 느끼지 않을까" 하더니 배시시 웃었다.
―하루에 보통 몇 통 정도 편지가 오나.
"인터넷 시대가 오기 전에는 하루 300통 정도 왔다. 그런데 요즘은 손편지·이메일 합쳐 100통이 채 안 온다. 사람들이 말하고 싶은 욕구를 인터넷으로 해소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여성시대' 청취자 편지의 가장 큰 특색은 뭔가.
"사회상을 반영한다는 거다. 1997년 초에 '남편이 갑자기 연락이 끊겼는데 죽었을까 걱정된다'는 편지, '사업이 잘 안 돼 바위에서 뛰어내리고 싶다'는 편지 등 우울한 사연들이 쏟아졌다. 담당 PD와 회의하면서 '이상하네. 우리 청취자들만 이런 거야?' 했다. 그해 겨울 IMF에서 돈을 꿔 온다는 뉴스가 터지더라. 요 몇 년 사이엔 특히 젊은 친구들이 '부모님께 죄송하다'는 내용의 편지를 많이 보낸다. '취업 준비하고 있는데 몇 년만 더 기다려주세요' 한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뉴스에서 보도하기 전부터 느낀다."
―개인의 편지에 사회 전체 맥락이 녹아 있다는 건가.
"그렇다. 1990년대 중·후반~2000년대 초반엔 탈(脫) 성매매 여성들이 결혼해서 아이까지 낳았는데 법원에서 빚 독촉장이 날아왔다며 상담하는 편지가 많이 왔다. 우리가 여성 단체에 연결해 도와주곤 했다. 그런데 2000년대 중반부터는 그런 편지가 확 줄었다. 성매매특별법이 실시된 시점과 겹친다."
―21세기 들어 두드러지는 변화가 있나.
"다문화가정에서 온 편지가 많아졌다. 치매 노인 모시는 거에 대한 편지도 특집을 만들어야 할 정도로 많이 온다. 요양원 이야기도 눈에 띄게 늘었다. 요양원에 부모 면회 가는 자식들이 쓴 것도, 요양원에서 일하는 분들이 보내는 편지도 많다."
―지난 22년간 가장 기억에 남는 사연은.
"'여성시대 키드'인 내게 이 질문은 '엄마랑 아빠 중 누가 더 좋아?' 하는 질문과도 같다. 그래도 꼽는다면 2000년대 초 '희제 엄마'가 보내온 편지다. 암투병 중인 40대 초반 여성으로 일곱 살 난 아이가 있었다. 부모님 없이 자라 여공(女工) 생활 하다가 야학에서 공부하며 성장한 분이다. 딱 우리나라 1960~70년대 딸들의 모습을 대변하는 삶이라 청취자들이 많이 가슴 아파했다. 결국 세상을 떴는데…. 진행자 양희은씨는 데뷔 30주년 기념 음반을 만들다 엎어버리고 희제 엄마를 위한 음반을 만들기도 했다."
박금선은 말을 멈추더니 "잊어버리는 게 나은 사연도 있는 것 같다"고 했다. "프로그램에서 도움받은 탈 성매매 여성이 고맙다며 개인적으로 연락해 왔었다. 그분께 말씀드렸다. '이 일을 잊어버리시는 게 훨씬 좋을 테니 저를 잊어버리시라'고."
'여성시대' 진행하면 정계 진출?
'여성시대'는 UN이 정한 '세계 여성의 해'인 1975년에 만들어진 프로그램이다. 임국희 아나운서가 진행하던 초창기엔 '여성살롱'이었다가 1988년 이종환이 진행을 맡으면서 '여성시대'로 바뀌었다. 이후 봉두완, 이효춘, 손숙, 변웅전, 정한용, 김승현, 양희은, 전유성, 송승환, 강석우 등이 진행을 맡았다. 현재 진행자는 양희은·서경석이다. 박금선은 "역대 진행자 중 봉두완, 변웅전, 정한용 등이 국회의원, 손숙은 환경부 장관을 지냈다. 서민들의 생활상을 잘 안다고 생각해서인지 진행자가 정치인이 되는 경우가 유독 많았다"면서 "지금도 '여성시대' 진행자로 발탁되면 주변에서 '정계 진출을 생각하느냐'고 물어본다더라"고 했다.
―어떤 진행자들을 거쳤나.
"내가 1993년 3월 처음 '여성시대'를 맡았을 땐 손숙·김승현씨가 짝꿍이었다. 이후 양희은, 전유성, 송승환, 강석우, 서경석씨 등을 만났다."
―진행자들마다 특색이 있을 텐데.
"손숙씨는 눈물이 많고, 김승현씨는 숨어서 좋은 일을 많이 한다. 송승환·강석우씨는 신사다. 전유성씨는 재미있는 분이다. 자유로운 분이라 틀이 있는 걸 좋아하는 내 입장에서 배운 게 많다. 그리고 양희은씨는 좀 용기 있는 분이다. 강자에게 강하고 약자에게 약하다. 서경석씨는 만난 지 몇 달 안 돼 알아가는 중인데 '저런 동생이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 싶다."
―애청자들은 '여성시대'가 대학만큼 많은 가르침을 준다는 뜻에서 '여성시大'라고 적어 보낸다고 하던데. 진행자들은 어떤가.
"편지를 읽으면서 진행자들이 변하는 게 느껴진다. '이 편지는 내가 정말 간직하고 싶다'며 복사본을 주머니에 넣어 가기도 하고, '몰래 도와주라'며 부탁하는 분도 있다. 남자 진행자의 경우 배우자가 '우리 남편이 이 프로그램 맡고 나서 자상해지고 내 마음을 많이 헤아리게 됐다'고 하기도 한다."
―제작진도 변하나.
"편지 쓸 여유가 없는 분들을 위한 전화 사서함이 있다. 조연출들이 그걸 듣고 정리를 하는데 아무 말 없이 한숨만 쉬다 끊는 분들이 종종 있다고 한다. 그런데 나중에 그분들이 용기 내어 전화하셨을 때 다시 들으면 '그 한숨 쉬던 분이 이분이구나' 안다는 거다. 사람을 읽게 되는 거다. 젊은 PD들은 처음엔 이 프로그램을 별로 내켜 하지 않는다. 구질구질한 면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참 좋았다'고들 말한다. 청취자들이 진행자와 우리 제작진을 좋은 사람으로 만들어 주는 거다."
―어떤 사람들이 주로 듣나.
"방송 시간이 아침 9~11시이다 보니 소규모 작업장에서 일하시는 분, 운전하는 분들, 영업사원들이 많이 듣는다. 이름은 '여성시대'지만 남성 청취자 비율이 51% 정도로 느껴질 만큼 여성보다 조금 더 많은 것 같다. 그런데 편지는 여자보다 덜 쓴다. 남자들 편지는 회사에서 잘렸다거나 하는 일 관련 내용이 많다. 마음을 자세히 안 드러내니 여자 편지에 비해 뚝뚝 끊어지는 면이 있다. 대신 남자의 눈물이 여자에 비해 충격이 큰 것처럼 그런 편지가 울림은 더 크다."
"마음의 근육을 키웠다"
박금선은 1986년 방송작가 일을 시작했다. 대학(이화여대) 교지편집부 선배가 교육학 전공인 그에게 TV 어린이 프로그램 구성작가 일을 소개해 줬다. '몇 년만 하고 그만둬야지' 했던 게 30년이 흘렀다. 그는 "남편이 공부하는 사람이라 결혼 후 10년 넘게 기본 생계를 내가 책임져야만 했다"고 했다.
―라디오 방송작가는 프로그램 뒤에 가려진 존재다. 설움은 없었나.
"전혀 없었다. 이 일로 밥벌이를 했으니 됐다고 생각한다. 어느 월급쟁이가 그렇게 자기 존재를 드러내면서 사나? 나는 사실 월급쟁이라기보다는 매일매일 원고료가 계산되는 일용직이지만…(웃음). 담당 PD와 갈등이 많아 일을 그만둘까 고민했던 사회 초년병 시절 책임 프로듀서인 부장님이 말씀하셨다. '생활인이라고 생각해. 예술을 하려고 하지 말고 생활인으로 열심히 원고를 쓰고 고료를 받아. 우린 생활인이야.' 그 말이 내게 많은 위로가 되었다."
―두 아이의 엄마다. 출산하고 보름 만에 일터로 돌아갔다던데.
"일을 완전히 그만두면 언제 다시 돌아갈 수 있을지 모르니까. 그런데 둔해서 그런지 그게 슬프거나 하진 않았다. 그러고는 일이 바쁘니까 곧 잊어버렸다. 방송작가들은 6개월마다 마음이 조마조마하다. 개편 때 잘릴 수 있기 때문이다. 나도 한때는 프로그램에서 잘리는 꿈을 꿀 정도로 두려웠다. 그런데 지금은 어느 누구나 다 그런 두려움을 갖는 시대가 오지 않았나. 어떻게 생각하면 나는 남들보다 좀 더 일찍 '영원한 직장이 없는 시대'를 살았던 것 같다."
1999년 4월 박금선은 어린이집에 가지 않으려 발버둥치는 두 돌 반짜리 아들을 억지로 떼어놓고 출근길 택시에서 '내가 꼭 이러고 살아야 하나' 싶어 엉엉 울었다. 그 모든 과정을 지켜본 택시 기사가 라디오 볼륨을 키우며 말했다. "아줌마, 여기 '여성시대' 좀 들어보세요. 아줌마보다 더 힘든 사람 진짜 많아요. 좀 지나면 나아질 거예요. 힘내요."
―일이 병 주고 약 준 셈이다.
"그렇다. 그날 꼭 미친 여자처럼 울다가 다시 웃었다. 그리고 힘을 냈다. '여성시대'는 내게 큰 학교였다. 친구도 사귀고 배우는 것도 많고 어떨 때는 운동장에서 혼자 쓸쓸하게 서 있기도 하고…."
―청취자들로부터 얻은 가장 큰 교훈은 뭔가.
"부산에 사는 청취자 한 분이 있다. 부모 반대를 무릅쓰고 도망가서 결혼해 힘들게 사는 분인데 '그럴 수도 있지'가 이분의 좌우명이 됐다. 아들이 마음에 안 드는 며느릿감을 데리고 왔을 때도 '그럴 수도 있지', 아버지 형제가 갑자기 나타나 돈을 요구할 때도 '그럴 수도 있지'…. 우리 청취자들 중에서는 '어머나, 이분은 도를 엄청 닦으셨네' 할 정도로 삶에 달관한 분들이 많다. 지혜를 닦는 능력은 부(富)나 배움과는 상관없다는 걸 배웠다. 힘들 때면 생각한다. '나는 지금 마음 근육을 만드는 헬스장에 있는 거야.' 물론 청취자들로부터 배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