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자마자 ‘프리미엄’을 떠올린다?

작년 11월부터 서비스를 시작한 카카오 블랙 택시는 기본요금이 8000원이다. 휴대전화 애플리케이션으로 부르면 벤츠 E 클래스나 렉서스 ES 같은 외제차가 도착해 택시 기사가 직접 문을 열어준다. 택시 안엔 생수·젤리·휴대전화 충전기 같은 것들이 놓여 있다. 카카오 블랙 택시를 운전하는 한모(38)씨는 “블랙 택시 운전자들은 미리 교육을 받는다. 혼잣말로 욕을 하지 말고 승객에게 하소연을 하거나 ‘이번 총선에 누굴 찍을 거냐’는 식의 정치적인 질문을 하지 말라고 배웠다”고 했다. 일반 택시 요금보다 두 배가량 비싸지만 편하고 고급스러운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것이 이 업체의 설명.

왼족부터 현대카드 더 블랙, 갤럭시S7, 카카오택시블랙 로고, 아이폰

서비스의 이름은 그럼 왜 블랙이 됐을까? 카카오 커뮤니케이션 강유경씨는 “’고급스럽다’라는 뜻을 품은 모든 단어를 후보에 올려놓고 몇 달씩 고민했는데, 결국은 블랙이 낙찰됐다”고 했다. “아예 ‘고급 택시’ ‘프리미엄 택시’로도 해볼까 했었는데, 한국인도 외국인도 누구나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단어는 역시나 블랙이었죠.(웃음)”

[휴대전화에서 워킹화까지… 불황엔 色이 통한다 ]

[논란 많더니…'辛라면 블랙' 한 달만에 초대박 터뜨렸다]

한국마케팅연구원 오수연씨가 쓴 ‘색채 심리와 컬러 마케팅’을 보면 검은색은 본래 부정적인 이미지의 색이다. 수많은 고전 작품과 영화 등에서 나오듯 저승사자의 도포 빛깔이나 악마의 옷이 검정이다 보니 오랫동안 죽음, 두려움, 불안함, 밤, 어두움 등을 상징해왔다. 긍정적인 이미지가 없진 않다. 먹으로 대표되는 ‘불변’의 이미지, 신부와 수도사의 옷 색깔에선 경건함과 겸손함을 떠올리게 하기도 한다.

이런 검정이 현재의 ‘최첨단’ ‘최고급’의 이미지를 덧입게 된 건 1990년대 말~2000년대 초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시각디자이너 최미형씨는 “1990년대 말부터 각종 전자 제품이 소위 ‘블랙 라벨’이라는 이름을 입고 검은색으로 나와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샤넬, 지방시, 이브 생로랑 같은 브랜드에서 주요 제품에 검은색을 많이 쓴 것도 큰 영향을 끼쳤다”고 말했다.

2006년 LG경제연구소는 아예 ‘어퍼블랙족(族)’이라는 신조어를 내놓는다. 검은색이 주는 최고급의 이미지와 가치를 동경하고 열광하는 20·30대 대학생이나 직장인을 지칭하는 말이었다. 최씨는 “검은색이 소위 ‘VVIP 마케팅’ ‘1% 마케팅’에 집중적으로 쓰이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로 보인다”고 말했다. 화장품 회사 엔프라니가 ‘블랙은 사치, 블랙은 가치’라는 광고 카피를 내세운 검은색 화장품을 선보인 것(2006년), 현대카드가 ‘더 블랙’이라는 이름으로 0.05%의 상류층을 겨냥한 신용카드를 내놓은 것(2005년)도 비슷한 시기다. ‘더 블랙’의 연회비는 200만원. 해외 호화품을 대신 구입하거나 비행기 티켓·호텔 예약 등을 대신해주는 식의 소위 ‘컨시어지 서비스’로 화제를 모았다. 당시 ‘더 블랙’ 1호 고객은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이었다.

갈수록 강화되는 ‘블랙 마케팅’

작년부터 ‘블랙’ 열풍은 심화되기 시작했다. 이제 상당수 레스토랑과 카페들은 일반 고객을 상대로 한 가게와 VVIP 고객을 받기 위한 가게를 따로 열고, 후자의 경우 블랙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고깃집(‘한와담 블랙’), 중식당(‘JS가든 블랙’), 카페(‘탐앤탐스 블랙’)까지 장르를 가리지 않고 너도나도 블랙을 붙이는 식이다. 서울 한남동 ‘한와담 블랙’의 이재(26) 매니저는 “일반 매장과는 달리 철판 요리 메뉴가 추가돼 있고, 요리사가 직접 고기를 구워주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고 했다.

[가전, 고급화 위해 '블랙라벨'을 입다]

이젠 각종 음식에도 블랙 또는 블랙 라벨식의 단어가 종종 붙는다. 요식업계 관계자들은 2011년 4월 농심이 ‘신라면 블랙’을 개당 1600원에 내놓으면서부터 블랙이라는 단어가 대중에게 폭넓게 각인됐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농심 윤성학 홍보차장은 “처음 제품 이름을 지을 때부터 ‘조니워커 블랙라벨’처럼 듣기만 해도 고급스러운 느낌의 단어를 찾으려고 애썼고, 그게 블랙이 됐다”면서 “검정이라는 빛깔엔 또 건강함의 이미지가 있다. 인스턴트 라면에도 블랙이 붙으면 더 건강한 느낌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고 했다. 이젠 스테이크(아웃백 스테이크 블랙라벨), 주스(썬키스트 오렌지 블랙라벨), 소시지(천하장사 블랙라벨), 바나나(델몬트 블랙라벨 바나나)까지 블랙이 붙는 세상이 됐다.

무의식 속의 ‘新계급사회’

블랙 마케팅이 심화되면서 곱지 않은 시선도 생겨나고 있다. 카카오 블랙 택시를 이용해봤다는 블로거 ‘까루’는 이메일 인터뷰에서 “’블랙 마케팅’이 늘어날수록 소비자가 감당해야 할 비용은 점점 더 올라간다. 블랙이라는 이름에 현혹되면 안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고객이 돈을 얼마나 낼 수 있는지를 파악해 색깔로 분류해 서비스를 달리하는 것은 신종 계급사회를 부추기는 것”이라고 했다.

패션지 ‘데이즈드 앤 컨퓨즈드’ 이현범 편집장도 비슷한 말을 했다. 이씨는 “블랙만 편하고 대접을 달리 받는 것은 문제가 있다. 블랙이 아니어도 그런 대접을 받아야 한다. 값비싼 블랙을 소비해야만 이런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는 건 사실 서글픈 일이다”고 말했다.

블랙 마케팅

검은색이 좀처럼 쓰이지 않았던 제품에 '블랙 컬러'를 과감하게 적용하는 마케팅 방법이 인기를 끌고 있다. 예상치 못한 색상으로 소비자들에게 즐거움을 주면서 검은색이 가진 고급스러운 느낌을 강조하는 전략이다.

이전부터 명품이나 의류 브랜드의 최상위 제품군(群)에는 '블랙 라벨'이라는 이름이 붙어왔다. 그러나 실제 검은색은 세련된 디자인의 가구나 가전제품, 중후한 느낌의 고급 승용차에 한정적으로 쓰여왔다. 검은색은 그만큼 고급스러운 느낌을 주지만 그렇다고 상업 제품에서까지 흔히 쓰이는 색상은 아니었다.

이런 흐름이 요즘 '반전(反轉)'되고 있다.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는 곳은 화장실이다. 지금까지는 흰색이나 금속성의 은색이 전부였던 세면대와 변기가 검은색을 입었다. 검정 톤의 악어·뱀 가죽의 무늬가 들어간 특수 필름을 붙여 가죽의 느낌을 그대로 살리기도 한다. 화장실이 단지 급한 용변을 해결하는 곳이 아니라, 핸드백 같은 고급 가죽제품을 구경할 때처럼 즐거움을 느끼는 공간이 된 것이다. ▷기사 더보기

컬러 마케팅에 성공하려면

컬러 마케팅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제품 성격, 기업 배경,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 등과 맞는 컬러를 선택해야 한다는 점이다. 단순히 소비자 선택 폭을 넓히기 위해 다양한 컬러를 제시하는 것은 디자인의 일부 요소일 뿐이다. 제품과 기업이 추구하는 메시지와 정체성(identity)이 명확히 부여돼야만 컬러 자체가 강력한 브랜드 요소로서 역할을 할 수 있다.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다. 컬러 마케팅은 디자인적 요소를 통해 제품과 기업의 긍정적인 이미지와 인식을 형성하고 감성적인 만족을 제공한다. 이런 측면에서 브랜드 구축(brand building) 과정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즉, 제품과 기업을 대변하는 특정 컬러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드러내야 첫째 목표인 명확한 브랜드 차별화를 이룰 수 있다. 커뮤니케이션 과정에서도 컬러·정체성·메시지의 일관성이 유지되어야 소비자들에게 더 확실하게 각인할 수 있다.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