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석배 사회정책부 차장

"도대체 '누리과정'의 뜻이 뭐지?" 몇 달째 누리과정 예산 파동이 이어지면서 '누리' 뜻이 뭐냐는 질문을 여러 차례 받았다. 취학 전 3~5세 어린이들의 교육비를 정부가 지원하는 정책이라는 것은 알겠는데, 왜 이름이 '누리'인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2011년 이 정책을 디자인할 당시 교육부와 복지부는 명칭 공모를 통해 누리라는 이름을 정했다. 5년 전 교육부의 설명을 들어보자. "누리는 세상을 뜻하는 순우리말로, 국가가 책임지는 교육과 보육을 통해 어린이들이 유치원과 어린이집에서 '행복한 세상'을 열어가고, 꿈과 희망을 마음껏 '누리도록' 하겠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용어 해설을 한참 듣고서야 고개가 끄덕여진다. 시민 대부분은 누리의 정확한 의미를 모른 채 이번 사태를 접했을 것 같다. 심지어 교육부 공무원들조차 "그런 뜻이 있었느냐"고 되묻기도 했다.

정책 이름이 복잡·모호하기로 교육부 따라갈 곳이 없다. CK(대학 특성화), PRIME(산업 연계 교육 활성화), ACE(학부 교육 선도 대학), LINK(산학 협력 선도 대학), CORE(대학 인문 역량 강화)…. 교육부 업무 보고서를 읽고 있으면 의류 브랜드 출시 행사인지, 제과업계 사업 계획서인지 헷갈릴 때가 많다.

이름이 모호한 것도 그런데 누리과정 집행 과정이 복잡하게 꼬이고 왜곡됐다. 사실 이 정책은 우리 교육의 심각한 현실을 바로잡자는 취지로 시작됐다. '출발선이 다른 교육'이 그것이다. 만 6세에 의무교육을 받기 시작하는 우리나라는 초등학교 입학 전 아이들 간 학력 격차가 매우 크다. 사(私)교육 탓이다. 서울 강남 등 일부 지역에서는 소위 영어 유치원(유아 대상 영어 학원)을 다닌 후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반면, 농어촌 어린이들은 어린이집 등을 다니지만 교육 수준이 대도시보다 떨어진다.

초등학교 입학 전부터 생기는 격차를 줄이기 위해 정부가 공통 교육과정을 만들어 유치원·어린이집에서 똑같이 가르치겠다는 게 누리과정의 시작이다. 전국의 9000여 유치원과 4만2000여 어린이집에 같은 교육과정을 도입하면 적어도 초등학교 입학을 1년 앞당기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교육 당국은 설명했다. 이후 매년 예산 4조원을 투입하며 이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저소득층 취학 전 아동 교육 지원을 어떻게 할지는 모든 나라의 고민이다. 영국의 슈어 스타트(SURE START), 미국의 헤드 스타트(HEAD START)가 이런 취지에서 시작됐고, 그 사회에서 제도의 성과를 놓고 치열한 논쟁이 있었다. 몇 년 전 영국에선 부모의 소득과 학력에 따라 학생 학력 격차가 나는 현상을 지적하며, 슈어 스타트 정책이 실패한 것 아니냐는 논란이 일었다.

올해 누리과정 5년 차에 접어드는 우리도 그런 고민과 논쟁을 해야 한다. 유치원과 어린이집 교육이 정부가 말한 대로 같은가? 도시와 농촌 어린이 간 학력 격차는 줄었는가? 학력 차이가 있다면 간격은 어떻게 줄여나갈 것인가? 저소득층 자녀에게는 지원 금액을 더 늘려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본질적 질문은 다 빠지고 예산을 누가 부담할지만을 놓고 정치권이 싸우고 있다. 이게 우리 수준이며 현실이라는 생각이 들어 더 서글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