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문장은 세 줄을 넘지 않게' '시루떡 문장은 이제 그만'….

최근 서울중앙지법이 판사들에게 판결문 작성 지침서를 만들어 돌렸다. 156쪽 분량으로 8개월간 판사 12명이 머리를 짜내 만들었다. 법원 판결문 문장의 악명은 자자하다. 한 페이지 내내 쉼표며 마침표를 찾아보기 힘들어 '숨 넘어가는 판결문' 소리도 들었고, 국어사전에도 잘 나오지 않는 일본식 용어가 그득해 '외계어 같다'는 비아냥도 들었다. 이번 지침서는 판결문을 쉽게 쓰자는 판사들의 다짐을 담은 것이고, 반성문이기도 하다.

지침서는 우선 짧은 문장을 쓰자고 했다. 특히 '세 줄(90자) 넘는 문장은 독자(소송당사자)를 괴롭히는 문장'이라고 했다. '말하듯 판결문을 쓰라' '하나의 문장에는 하나의 의미만 담으라'고 했다. 간결한 문장으로 이름난 소설가 김훈의 문체를 사례로 들기도 했다.

복잡하고 언제 끝날지 모르는 판결문 문장을 일컫는 판사 세계의 은어(隱語)가 '시루떡 문장'과 '고며고며 타령'이다. 시루떡 문장은 '심판 대상이 되는 점…위법 사유에 불과한 점…소송경제에 부합하지 않는 점 등에 비추어 보면'처럼 '~점'이라는 단어를 사용해 문장을 끊지 않고 줄줄이 이어붙이는 일을 꼬집은 말이다. 고며고며 타령 역시 '~하고' '~하며' 같은 접속사를 반복적으로 써서 한없이 늘여놓은 문장이다. 지침서는 또 '불필요한 말은 잡초 뽑듯 빼야 한다'며 '해지할 수 있다고 할 것이다'는 '해지할 수 있다'로, '임차인으로서의 지위'는 '임차인의 지위'로 쓰자고 했다.

지침서는 '외계어'로 불리는 일본식 법률 용어를 쓰는 것도 문제라고 했다. 국어사전에도 나오지 않는 '선해하다'라는 표현은 '이해하다'로 바꾸고, '기왕증'은 '과거의 병력(病歷)'으로 바꿔 쓰자고 했다. 또 '완제일'은 '(빚을) 다 갚는날'로, '가주소'는 '임시 주소'로, '구거(溝渠)'도 '도랑'으로 바꾸자고 했다.

법원의 판결문 본문은 글로만 이뤄져 있다. 지침서는 '재판 과정에서 나온 그래픽이나 현장 사진을 판결문에 넣으면 소송 당사자들이 사건을 더욱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이 같은 제안이 법원 실무에 실제 적용되면 머지않아 기업 등에서 활용하는 시청각 자료를 담은 판결문이 등장할지도 모를 일이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2013년부터 작년까지 모든 사건의 판결문이 국민에게 전면 공개된 만큼 판결문도 변화를 시도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다"며 "짧고 쉬운 용어를 쓴다고 해서 법원 내에서 성의 없다고 깎아내리던 건 옛말"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