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나오자 공기가 달라졌다. '제17회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 우승자 갈라 콘서트'가 열린 2일 오후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지난해 10월 콩쿠르 우승 이후 처음으로 모국 무대에 선 피아니스트 조성진(21)은 합창석에 먼저 인사하고 뒤돌아 객석을 보고 씩 웃었다. 오매불망 그의 실연(實演)을 고대해온 청중은 어미 새 같은 심정으로 두 손을 모았다. 피아노 앞에 앉은 조성진이 헝겊으로 건반을 훔치고 가만히 호흡을 고를 땐 2500석 객석도 일제히 적막에 잠겼다.

콩쿠르 이후 다져온 오랜 기다림만큼 지성과 감성이 완벽히 교차한 연주였다. 2일 오후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콩쿠르 우승 이후 첫 고국 무대를 선보이고 있다.

'녹턴 13번.' 조성진은 한결 여유로워진 손놀림으로 곡에 어린 비장미와 엄숙미를 능란하게 펼쳐냈다. 쇼팽의 자유로운 상상력이 극대화한 '환상곡'에선 그야말로 "물오른 피아니즘"을 보여줬다. 피아니스트 김주영은 "파괴적 악상과 갑작스레 찾아오는 평온 등 이 곡 전반에 흐르는 환상성을 무작정 강조하기보단 연주자 스스로 이미지를 구체화하고, 표현을 간결하게 해 좋았다"고 했다. 콩쿠르에서 '최고 연주상'을 안겨준 폴로네즈 '영웅'과 앙코르로 선 굵은 남성미가 매혹적인 '녹턴' 유작을 들려준 젊은 피아니스트에게 청중은 뜨거운 박수로 화답했다. 대미를 장식한 곡은 오후 8시 공연의 2부 마지막 순서로 오케스트라와 함께 연주한 피아노 협주곡 1번이었다. 젊은 피아니스트의 농익은 연주에 청중은 기립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음악 칼럼니스트 장일범은 "조성진은 크리스티안 짐머만 못지않은 빼어난 연주를 들려줬다", 음악 칼럼니스트 박제성은 "폴란드에서보다 더 대장부스러운 기백, 기예의 한계를 넘어서는 거장으로서의 첫 발걸음을 목도할 수 있었다"고 했다.

이날 서울은 '청년 쇼팽' 조성진에게 푹 빠졌다. 콘서트홀 로비는 공연 한 시간 전부터 몰려든 관객들로 복작댔다. 이미 8만5000장 넘게 팔린 콩쿠르 실황 음반과 프로그램 책을 사려는 사람들로 매표소엔 거대한 인간띠가 형성됐다. 화장실은 이용객이 몰려 한때 물 공급이 중단됐고, 관리인들은 "콘서트홀에서 이렇게 많은 쓰레기가 나온 것은 처음"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오후 2시' 관객은 행운을 거머쥔 이들이었다. 원래 1회(오후 8시)만 예정돼 있던 콘서트에 한 회가 더 추가됐고, 그마저 전석 매진됐기 때문이다. 그 틈을 암표상이 파고들었다. 그러자 기획사 크레디아는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 보통 예매번호와 휴대폰 번호만 확인하는 절차를 확대해, 현장에서 구매자의 이름과 생년월일, 신분증을 확인했다. 크레디아 티켓 매니저 한주희씨는 "R석(18만원) 암표가 80만원까지 치솟았단 말이 있어 이 같은 절차를 마련했다"며 "김준수나 조승우가 출연하는 뮤지컬 공연장에서나 해본 일을 클래식 공연장에서 해봐 우리도 놀랐다"고 했다.

조성진만큼은 아니어도 그에 버금가는 박수와 환호를 받은 연주자는 샤를 리샤르 아믈랭(2위)과 케이트 리우(3위)였다. 김주영은 아믈랭에 대해 "아기자기한 맛이 두드러졌다"고 했고, 유일한 여성 입상자인 리우에 대해선 "가녀린 체구와 달리 음악의 규모가 크고 외향적이란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