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5월 서울 참여연대 회의실에서 열린 천안함 조사 결과에 대한 토론회에서 신상철씨가 '좌초설'을 주장하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36부(재판장 이흥권)는 25일 천안함 좌초설을 제기하면서, 정부가 일부러 생존자 구조 작업을 늦추고 증거 인멸을 시도했다고 주장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신상철 전 천안함 민관 합동수사단 조사위원에게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법원은 이날 판결에서 천안함이 북한 어뢰에 의해 침몰했으며, 암초 등에 의한 좌초설은 근거가 없다고 밝혔다.

법원은 2010년 8월 신씨가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지 5년 6개월 만에 1심 판결을 내놓았다. 그간 공판준비기일이 다섯 차례 열렸고, 공판도 47차례나 열렸다. 경기도 평택 해군 2함대 등지에서 현장 검증도 두 차례 진행됐다. 증인만 57명이며, 이날 1심 선고까지 재판장도 5번이나 바뀌었다. 재판부는 이날 선고에 앞서 "기록이 방대한데다, 천안함 사건과 관련된 사실 관계를 철저하게 규명하기 위해 시간이 오래 걸렸다"며 "46명 천안함 용사(勇士)와 수색·구조 과정에서 순직한 고(故) 한주호 준위의 명복을 빈다"고 밝혔다.

검찰의 기소 내용은 신씨가 인터넷에서 총 34차례 글을 올려 천안함 폭침(爆沈) 관련자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천안함 좌초설을 주장한 32개 글에 대해선 무죄로 판단했지만, 정부가 고의로 생존자 구조 작업을 지연했다거나 증거를 인멸했다는 내용이 담긴 2개 글에 대해선 유죄로 판단했다. 법원이 천안함 좌초설 관련 글에 대해 무죄로 판단한 것은 신씨가 사실과 다른 주장을 했지만, 공적 관심 사안에 대한 의견을 표현한 것으로 비방의 목적이 있다고는 보기 힘들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이날 신씨의 천안함 좌초설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했다. 우선, 수중폭발의 전형적 현상인 수중폭발이 없었다는 신씨 주장에 대해, 재판부는 "생존 장병은 당시 주변을 제대로 살필 상황이 안 됐고, 앞부분에 있어 물기둥을 보기 쉽지 않았다"며 "물이 튀었다거나 물이 고였다는 장병의 진술, 백령도 초소 경비병들이 사고 시각 섬광을 봤고 충격음을 들었다는 진술 등을 볼 때 사고 순간 물기둥과 섬광이 없었다는 주장은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천안함 우현 스크루가 휜 것은 수중 폭발에 따른 충격과 관성력에 의한 것으로 보인다"며 "어뢰 추진체 흡착물질도 폭발에 의한 것으로 천안함은 어뢰 폭발로 침몰했다고 인정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어뢰 추진체에 있는 '1번' 표기가 녹지 않아 어뢰 폭발로 볼 수 없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유성 매직으로 쓰였다고 해도, 그 부분까지 열 전달이 제대로 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수중 폭발로 녹는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어 "국민 누구나 공적 관심 대상에 대해 지식과 정보를 분석해 의견을 제시할 수 있다. 다양한 의견 중 잘못되거나 정부를 공격하는 의견이 있을 수 있는데 이를 제한하는 것은 헌법상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킬 수 있다"며 "사건 초기 정부와 군이 지나친 정보 독점으로 신씨가 알 수 있는 정보가 제한됐고 이것이 좌초설의 원인을 제공한 점, 비방 목적이 없는데다 공직자 개인에 대한 공격이라고도 보기 어려운 점 등을 볼 때 천안함 침몰 원인과 관련된 글 32개에 대해선 무죄로 판단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부가 정치적 목적을 갖고 생존 장병이 돌아올 수 없도록 일부러 구조를 지연하고 있다거나, 김태영 당시 국방장관이 천안함 함미 부분의 스크래치를 지우는 등 증거인멸을 했다는 내용이 담긴 글에 대해선 유죄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당시 정부는 천안함 폭침 직후 구조 및 수색을 준비했기 때문에 일부러 늦췄다는 것은 맞지 않다"며 "신씨가 허위성을 알고도 악의적으로 공직자 개인을 비방하기 위해 쓴 글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증거 인멸 주장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허위 사실로 보인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어 "신씨가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등 죄질이 가볍지 않다"면서도 "천안함 폭침 당시 여러 의혹이 난무하는 상황에서 지나친 진상 규명 의혹과 군에 대한 막연한 반감 때문에 허위 사실을 적시한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고려해 형량을 정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