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창(80·사진) 고려대 영문과 명예교수가 미당 서정주(1915~2000) 시인을 새롭게 조명한 강연을 펼쳤다. 김 교수는 23일 오후 2시 네이버 문화재단이 주최한 '문화의 안과 밖' 강연회에서 200자 원고지 500장 분량의 평론 '떠돌이의 귀향:미당 서정주의 시'를 발표했다. 1976년 미당의 시집 '떠돌이의 시' 해설을 쓴 지 40년 만에 미당의 시세계를 방대하게 풀이한 글이다.
김 교수는 "미당은 허무와 초월 어느 쪽에도 빠지지 않은 채 한국인의 현실을 일관되게 탐구한 정신의 역정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지금껏 미당의 시는 신화와 무속(巫俗), 노장(老莊)과 불교의 영향을 받았다는 평가를 주로 받아왔다. 미당을 추앙하는 평자들은 그렇기 때문에 세속을 넘어선 높은 경지에서 영원성을 탐구했다고 한다. 반대로 미당을 비판하는 평자들은 그렇기 때문에 현실 감각이 부족해 친일 행적과 정치적 실수를 남겼다고 공격한다. 하지만 김 교수는 "그의 시는 다른 어떤 시들보다도 한국의 현실을 전달한다"며 미당의 현실 감각을 새롭게 해석했다.
김 교수는 미당의 첫 시집 '화사집'(1941년)에서 출발해 시집 '신라초'(1961년)을 거쳐 시집 '질마재 신화'(1975년)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분석했다. 젊은 날의 미당은 서구 문학의 영향을 받아 유교적 금욕주의에 반발하는 관능주의를 표출했다. 미당의 관능은 서구적이면서도 건강한 토속적 감정을 드러냈다. 이후 미당은 한국의 전통문화로 되돌아와 고향(질마재)과 신라('삼국유사')를 바탕으로 삼아 바람직한 공동체를 꿈꾸었다. 미당은 고향 질마재 사람들의 삶을 노래하면서 자연과 설화, 일상이 구별되지 않는 공동체의 신화를 빚어냈고, '삼국유사'의 설화를 독특하게 해석함으로써 초월과 세속이 하나인 유토피아를 지향했다는 것. 김 교수는 "질마재는 한국적 감정과 현실의 세계이고, 신라는 그것의 역사적이고 이상화(理想化)된 투영"이라고 풀이했다. 그는 "한국인이 근대 국가의 모델을 추구하면서 남북한이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로 나뉘었지만 미당은 신라를 비롯한 한국적 전통문화의 틀 속에서 근대화의 대안을 찾으려 했다"고 설명했다.
미당은 초기 시에서 '육체의 건전한 돌진으로 모든 비극을 이겨내려던' 의지를 표명했지만 점차 비극을 화해로 극복하고 무위(無爲)의 정신으로 이동했다. 그러나 김 교수는 "미당은 삶의 현실을 완전히 초월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았다"며 "그의 시세계는 '신라초' 이후에도 침묵이나 허무로 끝나지도 않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