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천석 논설고문

모든 대통령은 빠르든 늦든 '나는 역사에 어떤 대통령으로 기록될까' 묻게 되는 순간을 맞는다. 그 순간 대통령은 취임 후 해온 일들을 하나하나 마음의 저울에 달아보고, 앞으로 반드시 해야 할 일·하고 싶은 일의 긴 목록(目錄)을 얼마 남지 않은 임기의 빠듯한 일정(日程)에 이리저리 꿰맞추며 다급해한다. 어느 대통령도 이 순간만은 느긋하지 못했다. 장기 독재 시대 대통령도 예외가 아니었다. 5년 단임 대통령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3년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더 좋은 나라를 향해 얼마만큼 전진했다고 생각하고 있을까. 임기를 마치면 자신이 대한민국 대통령의 역사 속에서 어느 자리에 놓일 거라고 판단하고 있을까. 대통령이 이렇게 자문(自問)할 땐 어느 누구도 대통령을 도와줄 수 없다. 현직 대통령의 이런 물음에 정직하고 정확하게 대답해 줄 사람을 찾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어느 시대나 최고 권력자가 자신의 얼굴을 정확히 비춰줄 거울을 갖는 건 쉬운 일도 흔한 일도 아니었다. 권력 주변의 거울은 권력자가 원하는 모습만 비춰준다.

대통령 평가에서 흔한 기준은 대통령 선거에 내세웠던 대표 공약이다. '국민행복시대' '비정상(非正常)의 정상화' '경제민주화' '맞춤형복지' 같은 공약들이다. 그러나 그럴듯한 단어들을 제멋대로 꿰맞춘 공약이란 잣대로 대통령의 성패(成敗)를 재기는 어렵다. '모든 공약을 지킨 대통령'은 '한 가지 공약도 제대로 지키지 않은 대통령'과 다를 바가 없다.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그 대통령이 취임하던 때보다 나라 형편이 나아졌느냐 나빠졌느냐에 따라 명암(明暗)이 갈린다. 외교나 경제 문제가 한 나라의 국경선 안에서 결정되지 않고 세계의 대세(大勢)와 얽혀가는 오늘의 세계에선 시대의 운(運)도 무시할 수 없다. 이런 눈으로 보면 '박근혜 시대'는 어느 부문에서 전진(前進)하고 어느 부문에서 후퇴했을까.

원폭에 이어 수소폭탄, 그리고 김정은이란 예측 불가능한 인간 폭탄이 등장한 지금의 남·북 관계는 논외(論外)다. 미국과 중국의 경쟁적 구애(求愛·love call)를 받으며 고등(高等)수학 문제를 푼다던 한국 외교는 어디로 갔을까.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진행되는 사태에서 우리는 미국과의 신뢰 관계가 미묘하게 어긋나고 있다는 걸 논리 이전(以前)에 몸으로 느낀다. 중국의 한국 중시(重視)가 한국 대통령을 후하게 대접하는 의전(儀典) 차원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을 여러 대목에서 실감(實感)하기도 한다.

대일(對日)외교에서 단기(短期) 현안인 외교·경제·군사 문제와 장기(長期) 현안인 역사 문제를 분리해 대응하라는 주문(注文)이 되풀이돼 왔다. 미국과 중국의 전략적 계산이 부딪칠수록 미국이 한·일 갈등 국면에서 일본 쪽으로 기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일본군위안부 문제 타결 배경 설명에 등장한 '최종적이고 불가역(不可逆)적 해결'이란 비(非)외교적 표현이 그런 국제 정치의 역학(力學)을 말해주고 있다.

대통령은 내정(內政) 문제와 관련해 지난 3년 자신이 거둔 성과를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대통령이 국회 등 너머 국민에게 직접 호소하는 빈도(頻度)와 강도(强度)를 보면 짐작이 간다. 오죽 답답했으면 거리에 나가 경제단체가 벌이는 '민생 구하기 입법 촉구 1000만명 서명 운동'에 동참했겠는가. 눈 씻고 찾아봐도 국회와 야당이 잘하고 있다는 국민은 한 명도 없다. 그런 국민이 보기에도 대통령이 거리의 서명 운동 명부에 자신의 이름을 올려놓는 사태는 정상이 아니다.

대통령 취임 선서는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로 시작한다. 우리 헌법은 대의(代議)정치와 3권분립의 원칙 위에 서 있다. 대통령의 거리 서명 운동 참여가 위헌(違憲)이라는 말이 아니다. 그렇다 해도 대통령의 국정(國政) 상대를 국민이 아니라 국회로 규정한 헌법 정신과는 어긋나는 것이 사실이다. 대통령이 국회가 아니라 국민을 직접 상대하겠다는 마음에 붙들리면 헌정(憲政)은 언제 중대 위기에 부딪힐지 모른다. 역사에서 거듭 증명된 사실이다.

다가오는 4월 총선은 '상식적으론' 야당이 분열된 상태에서 치르는 선거다. 양당 체제에서 3당 정립(鼎立) 시대로 넘어가는 길목이라는 건 여전히 '비상식적 추측'에 지나지 않는다. 해일(海溢)처럼 어느 한 쪽이 휩쓸어버리는 선거가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대통령의 대(對)국민 직접정치가 안고 있는 위험 요인을 가볍게만 볼 일이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재임(在任) 중 치러진 모든 선거에서 승리한 첫 대통령으로 기록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선거 승리가 국정의 성공으로 연결된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대통령이 자신의 성공을 뒷받침할 유능(有能)한 국회를 원한다면 다수결(多數決)의 원리를 마비시켜 식물국회를 만든 국회선진화법 개정에서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 그 길이 정도(正道)다. 대통령의 대국민 직접정치는 약효(藥効)만큼 독성(毒性) 또한 강하다는 사실을 대통령과 국민이 함께 깨달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