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중앙은행 총재 "환율, 개입할 정도 아니다"..루블화 급락 촉발
해외 IB "중앙은행이 패 보여준 것"…푸틴, 최장 경기 침체 직면

러시아 루블화 가치가 이틀 연속 달러 대비 기준 사상 최저치를 경신했다. 올 들어 러시아의 주요 수출품인 석유 값이 급락한 가운데, 최근 러시아 중앙은행이 환율에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히면서 약세에 베팅하는 투기꾼들이 몰려든 탓이다.

전문가들은 달러 당 루블화 가치가 현재보다 10% 이상 떨어져 90루블 대 수준으로 진입하지 않는 이상 러시아 중앙은행이 개입에 나서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블룸버그통신 등 외신들이 전했다.

앞서 러시아 중앙은행은 2014년 말 루블화 가치 하락을 방어하기 위해 기준금리를 대폭 인상하는 방식으로 대응한 바 있다. 하지만 최근 루블화 약세 원인이 국제유가 급락에 있고, 유가 전망이 더 낮아지고 있는 만큼 당시처럼 극단적으로 대응할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루블화 가치 급락으로 집권 이후 최장의 경기 침체를 해결해야 하는 도전에 직면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집권 기간(2000~ 2008년, 2012~현재)중 최장의 경기침체를 맞고 있다. 루블화 가치 급락과 두 자릿수 물가 상승 등으로 위기를 헤쳐나가긴 쉽지 않은 상황이다.

◆ 루블화, 이틀 간 급락하며 최저치 경신..중앙은행 ‘NO 개입’ 발언 영향

21일(현지시간) 러시아 외환 시장에서 달러당 루블화 가치는 장 중 사상 최저인 85.999루블까지 하락했다. 심리적 저항선이었던 80루블이 무너진 지 단 며칠 만이다. 루블화 가치는 올 들어서만 14% 하락, 1998년 리디노미네이션(Redenomation, 화폐 액면 단위 변경)
이후 최저 수준으로 밀렸다고 모스크바타임스는 보도했다.

특히 최근 이틀 간의 급락세는 엘비라 나비울리나 러시아 중앙은행 총재가 촉발했다는 관측이 높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나비울리나 총재는 지난 20일 "루블화가 펀더멘털 수준에 근접하고 있다"며 "금융 안정 위험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개입이 요구되는 정도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21일 러시아 외환시장에서 달러당 루블화 환율 추이

이에 대해 코메르츠은행의 루츠 카포위츠 분석가는 "(나비울리나 총재의) 이같은 발언은 (중앙은행이) 패를 공개한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중앙은행이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힘으로써 투기를 부추기는 일은 있어서는 안될 일"이라고 말했다.

나비울리나 총재의 말 대로라면, 만약 정부가 개입할 경우에도, 개입 자체가 전반적인 금융시스템이 위기에 처했다는 방증으로 여겨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때때로 중앙은행은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것이 더 낫다"고 지적했다.

나비울리나 총재는 자신의 발언으로 환율이 요동치자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리고 있는 세계경제포럼(WEF) 방문을 갑자기 취소했다. 향후 자신의 발언이 환율에 영향을 미칠 여지를 줄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투기꾼들이 총재의 발언에 대해 시장 개입 여부 등 이런 저런 이유를 갖다 대면 환율이 더 출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나비울리나 총재는 22일 WEF에서 ‘글로벌 부채의 딜레마'라는 주제로 연설을 하기로 예정돼 있었다.

◆ 중앙은행 개입은 당장 ‘글쎄’..유가 전망에 달려있어

ING그룹은 "루블화 가치가 신저점을 경신하면서 중앙은행이 개입해야 한다는 압박이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앞서 2014년 12월에 루블화 가치가 달러당 80루블 이하로 떨어졌을 때 러시아 중앙은행은 기준금리를 6.50%포인트 전격 인상했다. 이 여파로 루블화 가치가 급반등했다. 하지만 이러한 대응은 현재로선 가능성이 낮다. 유가가 추가로 하락하면 루블화 가치는 또 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올 들어 루블화 가치 하락률은 아직 국제유가 하락률(26%)에는 못 미치고 있다. 최근 국제유가는 배럴 당 28달러로 밀렸는데, 10달러대까지 하락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블룸버그가 15명의 전문가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러시아 중앙은행의 개입을 이끌어 내려면 달러당 루블화 가치가 90루블 수준으로 현재보다 약 10%는 더 떨어져야 할 것으로 예상했다.

만약 국제유가가 더 하락하고 루블화 약세가 가팔라진다면, 대규모 자본 유출입에 대해 통제를 가하는 게 러시아 중앙은행이 할 수 있는 첫 번째 조치가 될 것이라고 ING는 내다봤다. 또 환매조건부채권(RP) 한도를 조정할 수 있다고 밝히는 등의 구두 개입도 가능할 것으로 예상했다.

루블화 가치가 연일 급락하지만 일각에서는 국제유가 회복을 염두에 두고 루블화에 투자해야 한다는 조언도 나온다.

UBS자산운용은 “루블화가 강세로 돌아선다면, 개발도상국 통화 중 수익률이 좋은 5대 통화 안에 들어갈 것”이라며 이같이 전망했다. UBS자산운용은 “루블화가 향후 3개월 안에 달러당 73루블, 6~12개월 안에 70루블까지 강세를 보일 것”으로 내다봤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루블화 가치와 브렌트유 가격과의 상관관계는 0.7로 사상 최고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상관관계가 1에 가까울수록 동조화 정도가 높다는 뜻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