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PGA 투어 봅 호프 크라이슬러 클래식이 열리고 1주일 뒤 출전 프로 골퍼 128명 대부분이 서명한 청원서가 투어 커미셔너(회장에 해당)에게 도착했다. "이런 골프장에서 다시는 대회를 열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었다. 유례없는 일이었다. "지나치게 가혹한 코스"라고들 했다. 프로 선수들의 평균 스코어가 74타를 넘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라킨타에 있는 골프장 PGA 웨스트 스타디움 코스(파72· 7300야드) 이야기다. 이 골프장에서 29년 만에 PGA 투어가 다시 열린다. 21일부터 열리는 커리어빌더 챌린지가 그 무대다. 전신인 봅 호프 크라이슬러 클래식처럼 이 대회도 PGA 웨스트 스타디움을 포함해 3개의 코스를 돌며 열린다. 예전보다 쉽게 난도를 조정했다고 하는데, 진짜인지 의심하는 이가 많다.

PGA 웨스트 스타디움 코스를 설계한 이는 미국의 피트 다이(91)라는 인물이다. 그는 '골프계의 사드 후작'이라 불린다. "선수들이 코스에서 고통받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해서 붙은 별명이다. 골프계의 사디스트인 셈이다. 이 골프장 개장 이듬해인 1987년 처음 대회가 열렸을 때 선수들은 코스를 보고 저주를 퍼부었다. 코스를 돌던 다이는 선수들이 던진 썩은 과일을 피해 다녔다고 한다.

그는 거친 자연 속에서 골퍼의 진짜 실력과 인격을 테스트할 수 있는 골프의 고향 스코틀랜드의 링크스 코스를 이상향이라고 여기는 설계 철학을 갖고 있다. '가학적'인 성향도 강했다. 깊이가 6m를 넘는 벙커를 파고, 홀에서 홀로 이어지는 워터해저드를 만드는 것도 특징이다. 거북 등처럼 공을 올리기 어려운 그린을 만드는 것도 좋아한다. 당시 칼럼니스트 짐 머리는 "이 코스에서 라운드하려면 낙타(벙커 모래 지나기)와 카누(워터해저드 지나기), 신부(기도해 줄 사람)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 골프장은 늘 미국의 '100대 명문 골프장'과 '가장 어려운 골프장 50' 상위권에 나란히 이름을 올린다.

'골프계의 사드 후작'이 설계한 골프장 중 더 유명한 곳은 매년 5월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이 열리는 TPC 소그래스다. 미국 플로리다주 폰테 베드라비치에 있다. 이곳에서 처음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이 열렸을 때도 선수들 저주가 대단했다. 워낙 그린이 딱딱하고 거북 등처럼 생겨서 "주차된 자동차 지붕 위에 온그린을 시도하는 것 같다"고들 했다. TPC 소그래스 17번홀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하면서 악명 높은 파3홀이다. 사방이 워터해저드로 에워싸인 아일랜드 홀의 좁은 그린 위에 공을 올려야 한다. 이곳에서 최경주가 2011년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을 우승해 국내 팬에게도 낯익다.

다이는 1980년 문을 연 TPC 소그래스를 마음에 들어 했다. 그래서 6년 뒤 PGA 웨스트 스타디움을 '속편'으로 내놓았다. 파3인 17번홀 모양이 판박이다. 또 하나의 대표작 휘슬링 스트레이츠(위스콘신주 콜러)에는 무려 1000개 가까운 벙커가 있다.

매년 코오롱 한국오픈이 열리는 천안우정힐스는 다이의 큰아들 페리 다이가 설계했다. 아버지 다이의 취향이 이곳에도 배어 있다는 평이다. 우정힐스는 깊은 벙커와 워터해저드 때문에 '아름다우면서도 어려운 코스'로 손꼽힌다.

2013년 10월 20일 코오롱 제56회 한국오픈 골프선수권대회 4라운드가 열린 천안의 우정힐스골프장에서 수많은 갤러리가 18번홀을 둘러싸고 선수들의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

왼쪽은 물 오른쪽은 숲… '아름다운 지옥'

진짜 골퍼들의 무덤은 마지막 18번홀이었다.

하지만 이 18번홀은 세상에서 가장 까다롭다고 소문난 파3홀인 17번홀에 세상의 이목을 온통 떠넘겨 놓고는 '음지'에서 골퍼들의 운명을 주재했다. 이 코스의 설계자는 진짜 위기는 위기가 끝났다고 생각하는 순간 찾아온다는 교훈이라도 주고 싶었던 것일까.

해마다 미국 프로골프(PGA)투어 플레이어스챔피언십이 열리는 미국 플로리다주 폰테베드라비치의 소그래스TPC 스타디움 코스 18번홀(파4·462야드) 이야기다.

총상금 950만달러(약 102억원)가 걸려 있는 데다 톱스타들이 대거 출전해 '제5의 메이저'라고 불리는 플레이어스챔피언십이 12일 밤(한국시각) 개막한다.

지난달 초 마스터스 출전 이후 왼쪽 무릎 인대 부상으로 대회에 출전하지 못하고 있던 타이거 우즈(미국)를 비롯해 세계 랭킹 2위 마르틴 카이머(독일), 3위 루크 도널드(잉글랜드), 4위 필 미켈슨(미국), 5위 그레임 맥도웰(북아일랜드) 등 상위 랭커가 대거 출전한다. 세계 1위 리 웨스트우드(잉글랜드)는 나오지 않는다.

소그래스TPC 스타디움 코스는 처음부터 플레이어스챔피언십을 위해 생겼다. 1982년 이 코스에서 대회가 처음 열리자 골퍼들은 좁은 페어웨이와 단단하고 빠른 그린, 끝없이 등장하는 워터 해저드, 벙커에 진절머리를 냈다. 벤 크렌쇼(미국)는 "악의 화신인 다스 베이더가 설계한 스타워즈 골프 같다"고 악평했다. 이 코스 설계자가 다름 아닌 '골프계의 사드 후작'이란 별명을 가진 미국의 피트 다이(86)와 그 아내 앨리스였다. 사디즘(가학증)이란 말의 유래가 된 그 사드 후작. 다이는 '모든 골퍼들이 날 죽이고 싶도록 코스를 만들고 싶다'는 철학을 지니고 있었다.

이 코스에서도 17번과 18번홀은 골퍼의 마지막 숨통까지 조이는 '원투펀치' 같은 존재다. ▷기사 더 보기

벙커 사이로 '섬 같은 그린'… 그곳에 서면 숨이 멎는다

미국프로골프(PGA)투어 올 마지막 메이저대회인 PGA챔피언십 개최지에는 967개나 되는 '지옥 벙커'가 도사리고 있다. 12일(현지시각) 대회 1라운드가 막을 올린 미국 위스콘신주 콜러의 휘슬링 스트레이츠(Whistling Straits) 코스가 바로 그곳이다. 이곳에선 페어웨이와 그린이 작은 섬들처럼 벙커와 러프에 포위돼 있다.

올해 메이저대회는 마스터스가 매년 열리는 오거스타 내셔널골프장 외에도 페블비치 골프 링크스(US오픈), 세인트앤드루스 올드코스(브리티시오픈) 등 손꼽히는 명문 코스에서 열렸다. 하지만 명성에 비해 코스가 너무 쉽다는 평을 들은 곳도 있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벙커로 무장한 휘슬링 스트레이츠 코스에서는 어떤 드라마가 펼쳐질까.

'벙커 지옥'에서 열린 PGA챔피언십

미국의 10대 명문 퍼블릭 골프장으로 꼽히는 휘슬링 스트레이츠 코스는 1998년 미시간 호수 주변 공군기지 부지에 흙과 모래 61만㎥를 쏟아 부어 만든 곳이다. 7507야드(파 72)로 올해 메이저대회가 열렸던 코스 가운데 가장 길다. 골프다이제스트는 대회를 앞두고 벙커를 일일이 세어본 결과 967개였다는 특집기사를 실었다.

8번 홀(파4·507야드)에만 102개의 벙커가 있고 18번 홀(파4·500야드)에도 96개의 벙커가 입을 쩍 벌리고 있다. 항아리부터 거미, 운동장, 300야드에 이르는 길쭉한 벙커까지 온갖 모양의 벙커가 있다.

967개의 벙커 중 경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벙커는 50~100개 정도라는 게 골프다이제스트 분석이다. 휘슬링 스트레이츠는 8개 홀이 미시간 호수에 걸쳐 있고, 깊은 러프와 벙커로 영국아일랜드의 링크스 코스의 풍광과 닮았다. 하지만 골프 온라인이 "샷이 좌우로 날리는 골퍼, 특히 최근의 타이거 우즈에게는 잔인한 테스트가 될 것"이라고 한 것처럼 까다로운 코스다.

이 코스는 '골프계의 사드 후작'이란 별명을 가진 미국의 피트 다이(85·Pete Dye)가 설계했다. 사디즘(가학증)이란 말의 유래가 된 그 사드 후작이다. 그 자신도 "모든 프로가 날 죽이고 싶도록 코스를 만들었다"고 했다. 지난주 브리지스톤 인비테이셔널에서 우승한 헌터 메이헌(미국)은 "페어웨이라도 정확한 지점에 공을 떨어뜨리지 못하면 벙커나 러프로 굴러가도록 된 코스"라고 말했다. 최경주는 "그린을 이중 삼중으로 읽어야 할 만큼 굴곡이 심하다"고 했다.

2004년 이 코스에서 열린 PGA챔피언십에서는 비제이 싱(피지)과 저스틴 레너드(미국), 크리스 디마르코(미국)가 나란히 8언더파 280타를 기록한 뒤 연장에 들어가 싱이 우승을 차지했다. 당시 연장에 들어갔던 세 골퍼의 공통점은 정확성이었다. 골프 온라인은 "공을 똑바로 치지 못하는 선수들은 엄청난 재앙을 맞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