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난 배에 올라 바라본 고향의 마지막 모습을 아직도 잊을 수 없습니다. 하얀 눈이 온 지붕을 뒤덮고 있었지만, 늘 따뜻한 정(情)이 넘치는 마을이었어요."
최근 서울 중구 통일과 나눔 재단 사무실을 찾은 김윤순(여·85)씨와 노복순(여·84)씨, 박영선(여·82)씨가 '흥남여고 동창회' 이름으로 500만원을 기부했다. 이들은 모두 함경남도 흥남 출신으로, 1947년 세워진 흥남여고에서 고등학교 시절을 함께 보냈다. 하지만 6·25 전쟁 발발로 학창생활은 끝이 났고, 이들은 1950년 12월 '흥남철수작전' 당시 영하 30도의 혹독한 추위 속에서 수많은 피난민에 섞여 남쪽으로 향하는 배에 올랐다.
전쟁이 끝나고 서울에 정착한 세 사람은 1960년대 말 '흥남여고 동창회' 모임을 만들기로 뜻을 모았다. 흥남여고는 전쟁이 끝난 뒤 문을 닫았지만, 이들은 "고향과 모교를 끝까지 기억하자"고 했다. 1970년 가을 덕수궁 뒤뜰에서 열린 첫 동창회에 참석한 15명의 동창들은 서로 손을 맞잡고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이후 매년 10월마다 정기 동창회를 열면서, 회원 수도 100명을 넘어섰다. 이들은 최근 모임에서 통일나눔펀드 모금운동에 동참하기로 결정하고 500만원의 기금을 모았다. 김씨는 "생전에 고향 땅을 다시 밟을 수만 있으면 더 이상 바랄 게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