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오후 5시 30분. 서울역 인근 한 무료 급식소에 노숙인들이 모여들었다. 이날 급식소에선 이들에게 특별한 음식을 나눠줬다. 북한식 옥수수 국수와 만두였다. 앞치마를 두르고 배식 봉사에 나선 11명 중 7명은 목숨을 걸고 북한에서 탈출해 한국에 온 탈북자들이다.
이날 배식 봉사는 충남 천안의 갈렙선교회 김성은(51) 목사가 마련했다. 김 목사는 지난 2000년부터 17년째 북한 주민들의 탈북을 도왔다. 김 목사가 지난해 9월 미국 출장을 갔을 때 '탈북자들을 돕는 데 써달라'며 한 재미교포가 건넨 500달러에 교회 신자들이 십시일반 성금을 모아 급식비에 보탰다.
탈북자들은 노숙인들에게 따뜻한 국수와 만두 한 끼를 대접하면서 생사를 넘나들었던 탈북 과정 이야기도 해줬다. 2003년 탈북한 박에스더(45)씨는 "북한은 '밥은 먹었니'란 인사 대신 '잘 살아 있니'라고 안부를 물을 정도로 살기 어렵다"며 "사선(死線)을 넘어온 우리를 보고 노숙인들도 용기를 얻기 바란다"고 했다. 5년 전 거리로 나왔다는 노숙인 배모(47)씨는 "북한 실상을 들으니 '내가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사람이다'라는 생각이 없어졌다"고 했다.
탈북자들이 이틀 전부터 준비한 국수 500인분은 배식을 시작한 지 1시간 만에 동났다. 북한 청진에 살다 지난 2011년 탈북한 박혜림(37)씨는 "북한에서 굶기를 밥 먹듯 한 내가 노숙인에게 따뜻한 국수 한 그릇을 대접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한국 사회의 일원이 된 것 같아 뿌듯하다"고 했다. 이날 탈북자들의 봉사를 도운 노숙인 자활센터 '살맛 나는 공동체' 이병선(62) 대표는 "고난을 이겨내고 한국에 정착한 탈북자들이 노숙인에게 좋은 멘토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