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승현 광주과학기술원(GIST) 총장

영국 파이낸셜타임스가 2015년 기업 시가총액 기준으로 선정하는 세계 500대 기업에 한국은 4개 대기업이 포함돼 있다. 이는 2005년 9개에서 줄어든 숫자다. 이 기간 중국은 0에서 37개로 증가했다. 중국의 부상과 우리 기업의 위기 상황을 단적으로 표현하는 통계다. 이것으로 우리가 기술 변화 대응력과 기업 생태계에 새로운 활력이 필요하다는 것도 알 수 있다.

미국의 경제학자 코웬은 1980년대 이후 미국 경제의 침체 이유를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전반 전자기학 같은 혁신 기술에서 파생되는 부수적인 기술에 의존하는 산업 구조가 너무 오랫동안 지속됐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를 낮은 나뭇가지에 열린 열매를 따 먹기에 익숙한 산업의 속성이라고 표현했다. 이제 높은 곳에 매달린 열매를 따는 기술 혁신과 새로운 산업의 창출이 필요하다는 의미이다.

지난 20여 년 동안 우리의 과학기술계는 비약적인 성장을 해왔다. 지난해 QS타임스 대학 평가에서는 교수 1인당 논문 피인용지수에서 세계 10위 안에 국내 3개 대학이 진입하는 성과도 거두었다. 이 과정에서 우수한 연구자들이 육성됐고, 좋은 연구기반이 구축되었으며, 우수한 연구 인력이 산업계에 진출해 산업 기술개발의 핵심 역량으로 기여했다. 그러나 최근 이러한 연구개발의 성과목표와 평가시스템이 과학기술이나 산업 현장의 본질적인 문제 해결에 기여하지 못하고 연구개발의 규모 확대에 치우친 역기능도 드러나고 있다.

이를 수정하기 위한 연구개발 혁신이 시작됐다. 얼마 전 미래창조과학부의 지원을 받는 KAIST, GIST, DGIST, UNIST 4개 과학기술 특성화대학은 기술 혁신과 창업을 핵심으로 하는 비전 선포식을 가졌다. 신산업에 기여할 다음 세대의 기업가정신 교육, 창업 실무교육, 그리고 실전 창업을 포함하여 이공계대학의 새로운 혁신 모델이 되기를 선언한 것이다.

기술 혁신과 창업이 성장 동력이 되기 위해서는 기술 수요에 대한 민감한 대응이 필요하다. 과거의 성장 동력이 주로 경제 규모의 확대였다면 지금은 산업 구조의 변화에서 찾아야 한다. 규모의 확대 과정에서는 많은 사람에게 큰 지식 없이도 기회가 주어졌지만 산업 구조의 변화에서 생기는 기회는 변화를 이해하고 이에 정확하게 대응하는 사람에게 주어진다. 또한 규모의 확대에서는 모든 산업이 같이 성장할 수 있었지만 산업 구조의 변화 과정에서는 사멸하는 산업도 있을 수 있다. 기후 변화와 고령화 등 사회 변화에서 기술 혁신과 창업의 주제를 찾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