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 슬론(Hans Sloane·1660~1753) 경(卿)의 초상화다. 당대 영국 최고 초상화가였던 고드프리 넬러(Godfrey Kneller)의 유화를 바탕으로 존 파버 주니어(John Faber Jr)가 메조틴트로 제작했다. 한스 슬론 이름은 런던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그의 이름을 딴 거리와 광장이 여러 곳 있고, ‘한스 슬론 초콜릿 회사’가 지금도 성업 중이며, 심지어 그의 이름을 딴 나방(Urania Sloanus)도 있다. 그는 앤 여왕부터 조지 1·2세까지 세 군주를 거친 주치의였고, 아이작 뉴턴의 뒤를 이어 왕립 학술원 원장이 된 인물이다. 하지만 그 이름이 이토록 길이 기억되는 건 그의 유산으로 대영박물관이 설립됐기 때문이다. 슬론은 1687년, 당시 영국 식민지였던 자메이카를 방문했다가 그곳의 희귀한 동식물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원래 자연에 관심이 많았던 슬론에게 자메이카는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이렇게 시작된 그의 수집은 전 세계 광물, 화석, 미라, 골동품과 화폐, 서적 등 자연물과 인공물을 막론하고 방대하게 확장되었다. 슬론이 살았던 18세기 유럽은 계몽주의 도래와 함께 세상에 관한 모든 지식을 열망하던 백과전서의 시대였다. 슬론의 컬렉션은 말하자면 활자가 아닌 물건으로 엮은 백과사전인 셈이다. 천수를 누리고 세상을 떠날 때 슬론은 8만점에 이르는 수집품을 국가에 헌납했고, 이를 바탕으로 대영박물관, 국립 자연사박물관, 국립 도서관이 만들어졌다. 예술의 전당에서는 지금 대영박물관 특별전 ‘영원한 인간’을 열고 있다. 박물관의 역사를 되새겨보건대,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만드는 건 지식에 대한 끝없는 욕망이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