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서울시장이 지난주 돔구장을 짓겠다고 약속했다. 귀가 번쩍 뜨일 만한 얘기인데, 어쩐지 야구계는 환영 일색이 아니다. 'SNS를 통한 발표' 형식을 지켜본 이들이 박 시장의 예비 대선 공약 아니냐며 또 한 번의 공염불이 되지 않을까 의심까지 한다.
대한민국은 야구 즐기기에 그리 좋은 환경이 아니다. 시즌이 시작되는 3월 말엔 늦추위가 여전히 기승을 부린다. 게다가 중국에서 기다렸다는 듯 엄청난 양의 황사와 미세 먼지를 한반도 쪽으로 뿜어낸다. 아이들은 물론이고 어른조차도 황사냐, 야구냐의 갈림길에서 고민하게 된다. 푹푹 찌는 여름 폭염을 간신히 견뎌내고 쾌청한 가을 야구를 감상할라치면 어느새 초겨울 추위가 찾아온다. 핫팩은 포스트 시즌 관람의 필수 지참품이 됐다. 이런 모든 악천후를 극복할 수 있는 '제대로 된' 돔구장이 인구 1000만 넘는 서울에 없는 게 이상할 정도다.
서울시와 돔구장은 그동안 '궁합'이 맞지 않았다. 1990년대 초반 LG가 뚝섬에 개폐식 돔구장을 짓기로 결정하고 설계까지 마쳤지만 무산됐다. 2003년엔 당시 서울시장이던 이명박 전 대통령이 돔구장 얘기를 꺼냈지만 수천억원대의 민자 유치가 걸림돌이 돼 '도로아미타불'이 됐다. 지난 10월 개장한 고척 스카이돔은 당초 동대문야구장 철거에 따른 대체 구장 형식으로 실외 경기장으로 설계됐다가 오세훈 전 시장이 뒤늦게 완전 돔으로 바꾸는 바람에 기형적 형태로 팬들 앞에 등장했다.
21세기 최악의 돔구장이라는 여론의 십자포화를 얻어맞은 고척 스카이돔은 박원순 시장의 작품은 아니었다. 오세훈 전 시장의 디자인 중시 정책에 따라 유서 깊은 동대문야구장을 철거하고, 그에 따른 반대 여론을 무마하기 위해 내놓은 '전임자의 유산'이었다. 박 시장이 엄청난 유지비가 들어가는 고척 스카이돔을 유지하기 위해 내릴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은 프로야구단 유치 말곤 없었을 것이다.
'돔' 얘기로 꽤 골머리를 앓았을 박 시장의 입에서 다시 나온 돔구장 발언이 단순한 선거용 공약(空約)이나 허언(虛言)이 아니길 바란다. '박원순 돔구장'이 고척돔의 전철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전문가의 의견을 듣고 여론을 수렴하면서 철저하게 준비를 해야 한다. 최근 지어진 지방 야구장의 경우 외관은 번듯한데 아예 배수 시설이 제대로 안 돼 비가 조금만 와도 경기 취소를 고민하는 곳도 있다.
투자 주체인 구단에도 진정성을 보여주고 동기부여가 되도록 혜택을 줘야 한다. 지금처럼 '우리는 비싼 땅을 내놓으니 돔구장 건설비 대부분을 구단들이 책임지라'는 식이면 기업들이 수천억이 되는 돈을 쏟아붓겠다고 나설 리 없다. 투자 기업에도 뭔가 동기부여가 되는 혜택을 줘야 한다.
박원순 시장은 취임 초기 한 토론회에서 야구인들에게 "9회 말 역전 만루홈런을 때리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이번처럼 'SNS 깜짝쇼' 방식이어선 곤란하다. 만루홈런 치려다 헛스윙 삼진 아웃당하면 그 피해는 멋진 돔구장을 기대했던 시민들이 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