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피해자들에게 먼저 얘기도 없이 합의했어요. 당신 뭐 하는 사람입니까. 도대체 어느 나라 외교부예요?"(이용수 할머니·88)

"(할머니들이) 더 돌아가시면 어떡합니까. 그 전에 어떻게든 명예를 되살려 드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임성남 외교부 1차관)

정부가 위안부 피해자들을 찾아 한·일 위안부 협상에 대해 이해를 구했다. 하지만 "우리 입장을 전혀 배려하지 않았다"는 피해자들의 싸늘한 반응에 연신 고개를 숙여야 했다.

임성남 외교부 1차관은 29일 서울 마포구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쉼터를 찾아 김복동(89)·이용수(88)·길원옥(87) 할머니를 만났다. 임 차관이 "뒤늦게 찾아와서 죄송하다"며 들어서자, 할머니들은 "역사의 산증인이 이렇게 살아있는데 우리 생각은 조금도 없다. 우리 의사를 듣지 않고 일본 정부와 소통한 뒤 협상이 타결됐다고 발표하는 것은 안 된다. 일본은 법적으로 사죄를 해야 한다"고 호통을 쳤다. 임 차관은 할머니들의 손을 잡고 "연휴 기간에 협상이 급진전되는 바람에 충분히 설명을 드릴 여유가 없었다"며 "하지만 할머니들이 우리 어머니라 생각하고 협상에 임했다. 부족한 게 있겠지만 최선을 다했다"고 했다.

“할머니들 상처 치유되길…” 희망의 노랑나비 - 한 시민이 29일 서울 마포구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앞을 지나고 있다. 일본군위안부 생존자들이 겪었던 역사를 기억하고 교육하기 위해 세워진 이 박물관 담벼락에는 피해 할머니들에게 보내는 시민들의 메시지가 붙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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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들 앞에서 15분간 이어진 만남은 이후 비공개로 진행돼 40분 가까이 더 이어졌다. 할머니들은 "정부는 타결됐다지만 계속 싸워나갈 것"이라며 "아베 총리가 일본 대사관 앞에 와서 사죄할 때까지 수요집회도 더 열심히 하겠다"고 말했다.

조태열 외교부 2차관도 이날 경기도 광주 나눔의 집을 찾아 피해 할머니들을 만났다. 조 차관은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 후 이 문제에 집중력을 갖고 집요하게 노력했던 점을 잘 알고 계실 것"이라며 "할머니들의 상처 치유와 명예 회복을 위한 후속 조치 이행에 온 힘을 쏟겠다"고 했다.

위안부 협상 타결의 '얼굴'이었던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차관들이 할머니들을 만나고 있을 시각에 국회를 찾았다. 외부에 알리지 않고 나경원 외교통일위원장을 만났다. 윤 장관은 이 자리에서 '국내 설득'을 위한 국회의 협조를 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 장관은 추후 정부 고위직들이 계속 피해자 설득에 나설 방침도 밝힌 것으로 전해졌지만, 외교부 안팎에서는 "윤 장관은 국회가 아니라 피해자 할머니들부터 찾아갔어야 했다"는 비판이 나왔다. 한 외교 소식통은 "윤 장관은 정부를 대표해 위안부 협상을 최종 마무리 지었다. 그 당사자가 직접 이해를 구했어야 피해자 할머니들도 정부 설명에 더 진정성을 느끼지 않았겠냐"고 했다. 장관이 할머니들에게 차관들을 보내고 뒤로 빠져 있는 것은 모양새가 좋지 않았다는 얘기다.

한편 정부는 피해자 지원 재단 설립 준비 작업을 위해 내년 초 관계부처가 참여하는 실무 채널을 공식 가동하고, 내년 상반기 중 재단을 출범시킬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일 양국은 전날 위안부 문제의 최종 타결에 합의하면서 한국 정부가 피해자 지원을 위한 재단을 설립하고, 일본 정부가 10억엔의 정부 예산을 출연하기로 합의했다. 재단은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한 의료 서비스 제공, 건강관리 및 요양·간병 지원 등 다양한 지원 활동을 펼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