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외교장관의 '위안부 담판'(28일)을 앞두고 양측은 27일 국장급 협의를 통해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 인정 등 핵심 쟁점에서 '창의적 대안'에 일정 부분 의견 접근을 이룬 것으로 알려졌다. 창의적 대안은 '모호성'을 의미하는 수사(修辭)로 풀이된다. 즉 양측이 서로 유리하게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 돌파구를 찾겠다는 얘기다. 한 외교 소식통은 "현실적으로 외교 협상에서 어느 정도의 모호성은 불가피한 부분이 있다"며 "하지만 위안부 피해자들과 국민들이 충분히 납득하지 못한다면 언제든지 다시 '불씨'가 살아날 수 있어 정부가 막판까지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이와 관련, 일본 언론을 통해 협상 관련 내용이 무차별적으로 흘러나와, 우리 정부가 "일본이 진정성 있는 자세로 회담에 임하려는 건지 의문"(조준혁 외교부 대변인)이라고 비판하기에 이르렀다. 이는 일본 정부가 비(非)신사적 방법으로 여론의 흐름을 자신들의 '프레임'으로 몰아가 협상 주도권을 쥐려는 의도로 해석됐다.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한·일 외교장관 회담을 하루 앞둔 27일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윤 장관은 “우리 입장이 최대한 반영되도록 노력을 다하겠다”고 했다.

[아베 일본 총리의 관심은 한국 아닌 '국제사회 시선']

①사죄문에 '법적 책임' 대신 '자책감'?

아베 총리 주변에선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보낼 사죄 편지나 위안부 회담 합의문에 명확하게 '책임'이란 말을 쓰는 것에 난색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의 국가적·법적 책임을 공식화한 것으로 비칠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아사히(朝日)신문은 아베 총리가 '자책감(自責の念)'이란 표현을 쓰는 방안이 부상하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적어도 일본이 법적 책임을 인정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표현이 명기돼야 한다는 주장을 일관되게 유지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일본 총리의 사죄 언급과 함께 일본 정부가 예산을 투입해 피해자 지원 기금을 조성하는 방안' 등으로 절충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해졌다. '총리 사죄+정부 예산'이면 사실상 법적 책임을 나타내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얘기다.

②"청구권 협정 재확인하겠다"

일본 산케이(産經)신문은 일본 측이 위안부 문제의 타결 조건으로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이 유효하다는 점을 문서로 확약할 것을 요구 중이라고 보도했다. 일본은 위안부 문제에 대한 국가적 책임 인정을 요구하는 한국 측에 맞서 "청구권 협정으로 위안부 문제는 모두 해결됐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이 점을 재확인받겠다는 것이다.

우리 정부로선 받아들일 수 없는 내용이다. 위안부 문제처럼 일본의 국가 권력이 관여한 반(反)인도적 불법행위는 청구권 협정에 의해 해결된 것으로 볼 수 없고,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이 남아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도 이날 기자들을 만나 "청구권 협정에 관한 저희 입장은 변함이 없으며 앞으로도 변함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③지원 기금 10억? 100억?

이날 일본 언론들은 위안부 문제의 해결책으로 거론되는 지원 기금의 규모를 놓고 한·일의 견해 차가 크다고 보도했다. 일본은 1억~3억엔(약 10억~30억원) 정도를 생각하지만 한국은 약 10배인 10억~20억엔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아사히신문은 일본 정부 관계자를 인용, "1억엔이라면 한국이 납득할지 모르겠고, 20억엔 정도면 일본에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고 보도했다.

우리 정부는 "돈 문제는 중요한 게 아니다"는 입장이다. 다만 정부 관계자는 "기금의 규모를 놓고 시각 차가 존재하는 건 당연하다"며 "그래도 금액 문제는 본질을 다루는 다른 쟁점들에 비해 절충이 용이한 편"이라고 했다. 정부는 1995년 일본이 위안부 문제 해법으로 설립한 아시아 여성 기금의 사례를 참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기금은 일본 국민 성금 6억엔을 포함해 약 17억엔 규모였다.

④"한국도 지원 기금 내라"

교도통신과 아사히신문은 이날 위안부 피해자 지원 기금을 한·일이 공동 출자하는 공동 기금으로 운영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보도했다. 한국이 벌여온 위안부 피해자 지원 사업과 일본이 시행해온 아시아 여성 기금 후속 사업을 통합하는 구상도 검토 중이라고 한다. 도쿄의 외교 소식통은 "한국 정부는 1995년 설립된 아시아 여성 기금에 대해 처음엔 긍정적으로 평가하다가 정대협이 반대하자 태도가 바뀌었다. 이런 사태의 재발을 막으려면 한국 정부를 참여시켜 공동 책임을 지게 해야 한다는 게 아베 정부의 생각"이라고 했다. 우리 정부는 위안부 피해자 측에서 "배상 책임은 일본 혼자 져야지 왜 한국이 같이 지느냐"며 반발할 가능성을 우려하는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