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석조 특파원

22일(현지 시각) 이스라엘 텔아비브의 보안군(IDF) 특별 구역 '하 키르야.' 황갈색 군복을 입고 왼쪽 어깨의 견장 아래로 짙은 초록 베레모를 끼워 넣은 나탄(20·가명) 일병이 책상에 앉아 모니터 두 대를 통해 위성지도 사진을 보고 있었다. IDF에서 짙은 초록 베레모는 국가 엘리트 심사를 통과한 군 정보부 대원에게만 주어진다. 잠시 후 그는 컴퓨터 마우스로 지도의 한 부분을 찍었다. 적 군사 지역의 미세한 변화를 포착한 것이다.

영상 분석전담 9900부대의 일원인 나탄 일병은 혼자 일할 때 '에이스' 정보부대원의 면모였지만, 동료와 대화할 때는 부자연스러웠다. 상대방의 눈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했고 고개는 시종일관 비딱했다. "일본 만화 '나루토'가 너무 좋다"는 등 큰 소리로 혼잣말하기도 했다. 자기 내면세계에 갇혀 다른 사람과 소통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자폐증(自閉症)을 앓는 것이다. 나탄 일병은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이 나한테는 보인다"면서 "매일 특정 지역의 위성 또는 항공사진이 주어지면 이를 판독하는 임무를 맡고 있다"고 말했다.

이스라엘 텔아비브 보안군 본부의 9900부대 영상 분석실에서 22일 자폐증이 있는 나탄(20·가명) 일병이 모니터로 위성 지도를 판독하고 있다. 그는 일반인들보다 뛰어난 관찰력과 기억력을 지니고 있어 군 복무 2년간 영상 정보 분석에서 많은 성과를 냈다.

IDF 정보부 관계자는 본지 인터뷰에서 "2013년 자폐 환자가 자원 입대할 수 있는 군 복무 제도를 도입해 시행하고 있다"면서 "9900부대에 나탄 일병과 같은 '자폐증 병사'들이 여러 명 있으며 모두 맹활약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회성은 떨어지지만, 특정 분야에서 천재성을 나타내는 자폐 환자를 군이 받아들여 이들의 능력을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사회적 낙오자나 외톨이가 되기 쉬운 이들이 국가에 기여 활동을 통해 사회 구성원으로서 자신감을 갖도록 한다는 점에서도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정보부 관계자는 "창의적 아이디어를 사장시키지 않고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도입하도록 애쓰는 이스라엘 군 정책 결정자들의 유연성과 개방성이 있었기에 이런 제도가 탄생한 것"이라고 말했다.

자폐 환자의 천재성은 여러 학자들에 의해 검증됐다. 미국 뇌신경학자 올리버 색스의 연구에 따르면 일부 자폐 환자는 돼지 울음소리를 듣고 단번에 그 음이 'G 샤프'라고 맞추거나, 바닥에 쏟은 수백개의 콩알이 정확히 몇 개인지 셀 수 있는 등 뛰어난 청각·시각 능력을 지녔다. 두꺼운 전화번호부를 통째로 외워 버리는 비상한 기억력과 관찰력을 지닌 자폐 환자의 실상을 다룬 '레인맨(Rain man)' 같은 영화가 나오기도 했다. 9900부대는 '레인맨'들의 천재적 능력을 활용함으로써 위협 세력인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나 시리아·이란의 군사 시설의 특이 사항을 파악하고 있다. 실제로 IDF는 2013~2014년 '레인맨'들의 사진판독을 통해 가자(Gaza) 지구(地區)의 한 운동장에 숨겨진 하마스의 무기를 발견해 폭파하는 데 성공했다.

이날 또 다른 '자폐증 병사' 쉴로모(21·가명)는 근무를 하다가 다른 동료들과 함께 커피를 타 먹으며 수다를 떨었다. 쉴로모는 "계급에 상관없이 동등하게 대우하는 군 문화 덕분에 적응하기 쉬웠다"면서 "사실 입대 전에는 세상을 비관적으로 봤는데 군을 통해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을 하니까 '내가 쓸모 있는 존재구나'라고 느껴져 애국심도 생겼다"고 말했다. IDF 관계자는 "군은 인재를 얻고, 자폐 환자는 직업을 얻어 윈-윈(win-win)"이라면서 "'자폐증 병사'들이 3년 군 복무를 마친 뒤 직업 군인으로 전환하거나 민간 업체에 취직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