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넥타이, 연미복은 필요없다. 평범한 트레이닝복만 걸치면 충분하다. 프로배구 팬들에게 선수들은 아이돌 가수 이상 존재다. 25일 프로배구 V리그 올스타전이 열린 천안 유관순체육관의 야외 무대. 이민규(OK저축은행), 박상하(우리카드), 문성민(현대캐피탈) 등 V리그를 대표하는 훈남 선수들이 운동복 차림으로 레드카펫을 밟자 여성팬 무리에선 '꺄~' 하는 괴성이 터져나왔다. 체감 기온이 영하에 가까운 속에서도 이른 아침부터 나와 '오빠'들을 기다리던 골수팬들이었다. 한 여성팬은 "드디어 김학민(대한항공)의 손을 잡았다"면서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며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프로배구 팬은 국내 4대 스포츠 중에서도 '팬심(心)'이 가장 뜨겁기로 유명하다. 한 대에 수백만원이 넘는 전문가용 카메라와 렌즈를 들고 다니며 선수들 일거수일투족을 담는 '대포 여신'들도 있고, 고가의 선물도 아낌없이 퍼붓는다. 삼성화재(데 팡스), 현대캐피탈(자일스), 대한항공(에어로) 등 구단별 팬클럽 조직도 탄탄하다. 최근엔 송명근 등 젊은 훈남 선수가 많아 '연예인 군단'으로 불리는 OK저축은행 팬들이 늘어나는 추세다. 울진에서 온 여성 김수진(32)씨는 "다른 종목 선수와 달리 배구 선수들은 매너가 좋고 표정도 밝다"며 "얼굴은 곱상한데 몸매는 짐승돌처럼 좋은 '남자 베이글'이 많아서 좋다"고 했다.
가장 열성적인 배구 팬 중에는 20대 후반에서 30대 초중반 직장인 여성이 많다. 일단 겨울에 배구 시즌이 시작되면 이들의 하루 시계는 선수들 스케줄과 '싱크(동조)'된다. 아침에 일어나면 우선 선수의 SNS 내용을 확인하고, 경기 표를 예매한다. 팬클럽 사람들과 돈을 모아 버스를 대절해 경기장을 찾고, 입구에서 미리 선수들을 기다린다. 여름휴가를 아껴뒀다가 겨울에 배구 경기를 보러 가는 팬도 있다.
팬들의 선수에 대한 애정도는 '조공(朝貢) 리스트'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가져다 바치는 물건이어서 조공이다. 조공 품목은 빵과 떡부터 태블릿PC, 명품 구두 등 고가의 물건까지 다양하다. 직접 재배한 사과를 선물하거나 외국에서 구입한 재료로 수제 초콜릿을 만들어 선물하는 팬도 있다고 한다. 삼성화재 팬들은 올 시즌 초 팀이 부진하자 힘을 내라는 뜻에서 비타민 음료에 선수 사진을 인쇄한 라벨을 만들어 붙여 선물했다. 시상식에 입고 가라며 매 시즌 100만원이 넘는 고급 정장을 선수들에게 안겨주는 팬도 있다고 한다. 서울에서 온 우연승(29)씨는 "명품 코트를 사주겠다며 500만원 넘게 대출받는 팬도 봤다"며 "남자 친구와 맛있는 걸 먹는 걸 참아서라도 오빠들에게 선물하는 게 최고 기쁨"이라고 말했다.
팬들의 원정 준비도 체계적이다. 팬들은 간식 선물을 하기 전에 구단 영양사를 통해 선수가 좋아하는 음식과 꺼리는 음식을 미리 조사한다. 팬 사인회에서는 평소 궁금했던 목록들을 준비해 '선수 인터뷰'도 한다. 골수팬들의 휴대폰 메모장에는 '○○○는 단걸 싫어함' '△△오빠 상체 사이즈는 110㎝, 발은 290㎜' 등 가족도 알기 어려운 정보들이 빼곡하게 기록돼 있다.
배구 팬들은 고성능 카메라로 담은 사진을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공유하거나 선수 전용 달력을 만들어 구단에 선물한다.
현대캐피탈 세터 노재욱의 팬인 이수혜씨는 "연예인 사생팬(사생활까지 파고 다니는 팬)처럼 생각하면 곤란하다"며 "팬 사이에는 선수의 경기력을 저해하지 않는 선에서 응원을 하자는 암묵적인 룰이 있다"고 말했다.
문성민·배유나 올스타전 MVP
서브왕엔 송명근·이소영
문성민(현대캐피탈)과 배유나(GS칼텍스)는 이날 V리그 남녀부 올스타전 최우수선수(MVP)에 뽑혔다. 기자단 투표(총 18표)에서 문성민은 13표, 배유나는 9표를 받았다. 스파이크 서브 콘테스트에선 시속113㎞를 기록한 송명근(OK저축은행)이 남자부 우승을 차지했다. 여자부 1위는 이소영(GS칼텍스·시속 87㎞)이다. 올스타전 경기는 K스타가 V스타를 세트스코어 4대0으로 이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