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편의점 도시락 시장은 인기 연예인들이 벌이는 대리 전쟁터다. 2010년 GS25가 '김혜자 도시락'을 출시하며 편의점 브랜드 도시락 시장을 열었고 지난 3월 세븐일레븐이 '혜리 도시락'으로 경쟁구도를 만들었다. 여기에 지난 10일 CU가 '백종원 도시락'을 내세우며 3파전 양상으로 가고 있다. 엄마(김혜자)·먹방(혜리)·집밥(백종원) 이미지를 앞세운 경쟁에 SNS에는 각 도시락의 장단점을 비교하는 글들이 올라온다.

치열해진 업계 경쟁만큼 편의점 도시락을 먹는 사람도 늘어나는 추세다. 올해 GS25·CU·세븐일레븐의 매출은 지난해 대비 각각 54.2%, 46.1%, 89.5% 성장했다. '편도족(편의점 도시락족)'이라는 말까지 생겨났다. 김서령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외식진흥부장은 "요즘 업계에서는 '외식 시대도 가고 집밥 시대도 가고 편의점 도시락의 시대가 왔다'고 말할 정도"라고 했다. 싸구려 음식 취급을 받던 편의점 도시락은 어떻게 한 끼 식사 자리를 차지하게 됐을까.

각 편의점이 주력 상품으로 밀고 있는 백종원 도시락, 김혜자 도시락, 혜리 도시락. 가격 대비 품질이 좋다는 소문이 퍼지며 올해에만 김혜자 도시락 1400만개, 혜리 도시락 800만개가 팔렸다. ‘혜자스럽다(양이 푸짐하다)’ ‘마더 혜레사(마더 테레사+김혜자)’ 같은 말도 생겨났다.

25×20㎝ 사각형들의 전쟁

지난 23일 낮 12시 이화여대 구내의 한 편의점. 원형 테이블 3곳에서 학생들이 편의점 도시락을 먹고 있었다. 바로 옆 건물에 한식부터 양식까지 갖춘 식당이 있지만 이들은 편의점을 택했다. 혼자 도시락을 먹던 안모(23)씨는 "이 근처에서 스터디를 하는데 값도 싸고 양도 적당해서 자주 사먹는다"고 했다. 그가 택한 메뉴는 '김혜자 진수성찬 도시락'. 원래 가격은 3500원이지만 통신사 할인을 받아 2980원에 샀다. 행사로 받은 컵라면은 덤이었다.

편의점 도시락의 주소비자는 20~30대 직장인과 대학생이다. CU가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도시락 소비자 중 20~30대 비율이 58.6%에 이른다. 점포 순위에서도 이런 경향이 드러난다. GS25의 도시락 매출 상위 5위 점포는 관악구와 서대문구의 대학가, 사무실들이 몰려있는 강남구 등 대학이나 회사 인근에 집중돼 있다.

가로 25㎝, 세로 20㎝ 도시락 용기 안에는 편의점 회사들의 치열한 전략이 숨어 있다. 이나라 CU 간편식품팀 MD는 "요즘엔 맛과 가격뿐 아니라 비주얼도 신경 쓴다"며 "붉은 제육볶음이 주 반찬이면 계란말이로 노란색을, 시금치 무침으로 초록색을 표현해 색 조화를 고려한다"고 했다. 양호승 GS25 도시락 MD는 "초기에 '안전한 먹을거리'란 이미지를 부각했다면 요즘엔 성인 남성에게도 부족하지 않은 양을 더 중시한다"고 했다. 한 끼 식사임을 보여주기 위해 반찬 가짓수도 늘리고 있다. 김혜자 도시락은 2010년 출시 초기엔 4가지 정도였던 반찬 개수가 9~10개까지 늘어났다. 세븐일레븐은 아예 '11찬 도시락'처럼 반찬 개수로 이름을 지었다. 제대로 된 식사라는 느낌을 주려고 반찬도 김치·나물·고기 등 한식 위주로 갖춘다. 물론 각 반찬의 양은 비엔나소시지 2개, 손톱만큼 담은 시금치처럼 매우 적다. 가격 책정에도 전략이 있다. 업계에서는 가격 마지노선을 4500원 정도로 본다. 양호승 MD는 "보통 식당에서 가장 싸게 밥을 먹을 수 있는 게 5000원 정도라고 가정할 때 그 이하 가격을 제시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실제 GS25 기준 3500원 이상 도시락 매출 비중은 2013년 35%에서 올해 52%로 증가했지만 4500원 이상인 도시락은 나오지 않고 있다.

'함께 먹는 밥'에 의미 두지 않는 세대

2030 세대들이 편의점 도시락을 찾는 것을 두고 전문가들은 '청년층의 빈곤'을 말한다. '편의점 사회학'의 저자 전상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소위 88만원 세대라 불리는 요즘 청년들은 시간과 금전적으로 모두 여유가 없다"며 "절대적인 빈곤이라기보다 그만큼 심리적으로 쫓기고 있다는 의미"라고 했다.

편도족의 등장을 보며 젊은 세대가 더 이상 함께 먹는 밥에 의미를 두지 않는다고 분석하기도 한다. 23일 오후 1시 20분쯤 서울 역삼동 한 편의점에서 만난 이모(35·회사원)씨는 점심시간을 이용해 영어학원에 다녀온 뒤 도시락을 먹고 있었다. 그는 "짧은 점심시간 동안 메뉴를 정하고 줄을 서고 수다를 떨다 오는 게 시간 낭비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송재룡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는 "50대 이상 세대에게 '점심을 먹는다'는 '여러 사람과 어울려 사교 활동을 한다'와 동의어였다. 하지만 요즘 세대는 더 이상 그렇지 않다. 우리나라의 집단문화가 서서히 붕괴되고 있는 것으로 본다"고 했다.

장기적으로는 우리나라에도 일본처럼 도시락 문화가 더욱 확산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일본 도시락 시장은 편의점 전체 매출의 20~30%를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높다. 한 편의점 업계 관계자는 "도쿄에서는 점심시간에 회사원들이 쏟아져 나와 편의점에서 도시락을 사간다"며 "10년 전만 해도 남의 나라 이야기였지만 요즘 상황을 보면 점차 그런 방향으로 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