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어 달 전 영화관에서 영화 상영 전에 틀어주는 광고를 무심히 보다가 한 화장품 CF에 시선이 멎었다. 광고 말미에 영국 낭만 시인 존 키츠가 쓴 "아름다움은 진리고, 진리는 아름다움(Beauty is truth, truth beauty)"이라는 시구(詩句)가 붙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오스카 와일드가 한 말로 출처를 잘못 달고서.
키츠가 살아 있으면 자신의 명문장이 다른 사람의 이름을 달고 소개된 것과 자신이 예찬하던 불변의 미(美)를 '처짐 없이 탱탱한 피부'와 동의어로 바꿔버린 자의적 해석 중 어느 쪽을 더 개탄할까. 피식 웃음이 나면서도 '아름다움은 진리'라는 말이 요즘 우리 사회를 묘사하는 데 더없이 적절한 표현이 아닐까 싶기도 했다.
인터넷은 연일 '여신'들의 외모와 관련한 가십성 뉴스로 도배된다. 여신들이 어찌나 많은지 때로는 올림포스 신전에 살고 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다. '예쁘다'는 한 가지 주제를 놓고 표현 방식이 무궁무진하다는 점도 놀랍다. 'V라인' '꿀벅지' 등 신체 각 부위별 아름다움에 집착하다가, 한동안은 얼굴 크기와 동안(童顔) 여부로 관심의 초점이 이동하는가 싶더니 얼마 전 '어머님이 누구니'라는 노래 가사에선 아예 미모 DNA를 예찬하는 수준까지 진화했다.
최근에 외모가 평범한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드라마가 연달아 공중파를 타는 걸 보고 이런 외모 지상주의 풍조에 조금이나마 반기(反旗)를 드는 게 아닌가 내심 기대했다. 그런데 웬걸, 한 꺼풀 벗기고 보면 매한가지다. 방영 중인 '오 마이 비너스' 등을 보면 안정적인 직업과 원만한 성격을 가진 여주인공들이 뚱뚱하고 못생겼다는 이유로 무시당한다. 그들이 주위에서 인정받는 순간은 철저한 다이어트와 훈련을 통해 예쁜 여자로 거듭났을 때뿐이다. 뽀글 머리와 추녀 분장으로도 극 중에서 타고난 미모를 완전히 지우지 못한 여주인공이 기다렸다는 듯 허물을 벗고 '여신 자태'로 돌아오면, 그제야 세상은 그녀를 따뜻하게 받아준다.
현실이 이렇다면 한평생 외모 굴욕이 없이 살 수 있는 축복받은 DNA의 소유자나, 본바탕은 훌륭한데 관리를 소홀히 했던 '흙 속에 묻힌 진주'를 제외한 나머지는 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미운 오리 새끼에서 발버둥쳐도 백조로 거듭나진 못하고 메추리나 참새에 머물러야 하는 평범한 사람들을 위해 대한민국은 친절하게도 지하철에서까지 각종 외모 고민을 한 번에 해결해 주겠다는 성형외과 광고를 해 준다.
아름다운 여배우 카트린 드뇌브는 "나는 예쁜 여자들에게 세상이 얼마나 관대한지 발견할 때마다 우울해진다"고 했다. 그런데 사실 진짜 우울한 건 예쁘지 못한 여자들에게 세상이 얼마나 가혹한지를 발견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