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 서울 홍대 앞은 허허벌판이었어요. 같이 온 사람에게 '이런 델 왜 온 거야' 불평했죠. 그런데 지하에 있는 한 클럽으로 가는 거예요. 문을 여는 순간 음악의 신세계가 펼쳐졌어요."

1995년 한국에 도착한 일본 음악가 하세가와 요헤이(長谷川陽平·44)가 본 신세계의 이름은 '드럭'이었다. 이른바 '한국 인디 음악'의 산실(産室)이었던 그 전설의 클럽이다. 크라잉넛, 노브레인 같은 펑크록밴드들이 막 결성돼 공연을 하던 시절이었다. 장안의 음악 애호가들이 드럭을 중심으로 홍대 앞에 슬슬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중에 김웅(43), 이한철(43), 윤준호(45)라는 이름의 청년들도 있었다. 이후 이한철은 밴드 '불독맨션', 윤준호는 밴드 '델리스파이스'를 결성했고, 김웅은 크라잉넛의 매니저를 거쳐 음반 제작자로 성장했다. 그때 태동했던 인디 음악이 어느덧 20세 성년이 됐다. 그동안 네 사람은 어울리며 울고 웃고 자주 술 마시고 때론 싸우며, 각자 음악을 했다. 이달 중순 넷은 서울 이태원 현대카드 뮤직라이브러리에 모였다. 김웅이 최근 제작한 인디 음악 20주년 기념 앨범이 LP로 발매되기 전 함께 들어보기 위해서였다.

서울 이태원 현대카드 뮤직라이브러리에서 한국 인디 음악 20주년 기념앨범 LP를 듣기 위해 모인 음악가 이한철, 윤준호, 하세가와 요헤이와 제작자 김웅(왼쪽부터).

"갤럭시익스프레스 노래 정말 좋죠? 저런 음악이 인디 음악을 대표하는 이미지 중 하나같아요." 앨범에 수록된 갤럭시익스프레스의 '다시 처음으로'를 듣던 이한철이 입을 열었다. 윤준호가 옆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전 요조의 '불륜'이란 수록곡이 좋아요. 원래 요조가 하고 싶어한 음악에 가까운 처연함과 강렬함이 담겨 있어요."

이 앨범엔 크라잉넛, 노브레인, 황신혜밴드 같은 1세대부터 불독맨션, 장기하와 얼굴들, 최고은 등 20년을 아우르는 20팀이 참여했다. 김웅은 "몇 주년 기념 앨범이라고 하면 보통 명곡 리메이크로 채우는데 이 앨범은 대부분 신곡으로 채웠다"고 말했다.

하세가와가 거들었다. "앨범 수록곡을 보면 로큰롤부터 펑크, 댄스, 포크까지 다양한 음악이 담겼어요. 자기가 하고 싶은 음악을 자기 힘으로 하는 DIY(Do it yourself)가 인디 음악의 정신이기 때문에 가능한 거죠." 그 말에 다른 세 사람이 손뼉을 치며 감탄했다. "근데 하세가와, 한국말 정말 많이 늘었다!"

홍대 앞의 강렬한 음악적 에너지에 전염된 하세가와는 지금까지 이곳을 터전으로 음악가의 삶을 살았다. 그는 델리스파이스뿐 아니라, 황신혜밴드나 뜨거운감자 같은 밴드 멤버를 거쳐 지금은 장기하와 얼굴들의 기타리스트로 활동 중이다. "아무래도 일본 사람이다보니 내 기타 연주가 색다르게 들려서 찾아준 동료들이 많았던 것 같아요(웃음)."

윤준호와 이한철은 "색다르다"는 말에 공감했다. "홍대 앞의 음악가들은 좀 삐딱했어요. 선배가 하는 것과 무언가 다른 걸 하려는 부류의 인간들이었죠. 펑크가 득세하면 멋지게 모던록을 하는 밴드가 나오고, 말랑말랑한 포크가 유행하면 죽이는 하드록 밴드가 어디선가 나타났죠." 그 삐딱이들이 '차우차우'(델리스파이스), '슈퍼스타'(이한철), '싸구려커피'(장기하와 얼굴들) 같은 인기곡을 만들었다. 하세가와가 봤던 그 허허벌판에서 20년간 한국 음악계를 풍요로운 꽃밭으로 만들어준 꽃들이 자랐다. "우린 비주류나 소수가 아니에요. 대중의 다른 음악, 새로운 음악에 대한 갈증을 채워준 건 언제나 홍대 앞에 있던 음악가들이었어요. 인디 음악이 한국 음악의 절반을 책임지고 있다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