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초로 예상됐던 개각(改閣)이 계속 늦춰지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노동 개혁 및 경제 활성화 법안 처리에 '올인'(다 걸기)하면서 개각은 시계(視界) 제로(0)인 상황이다. 청와대 인사들은 "늦어도 내주 중반까진 개각을 단행하지 않겠느냐"고 전망하면서도 "그 또한 장담할 수는 없다"고 했다.

왜 이런 상황이 벌어지는 것일까. 박 대통령의 한 참모는 "대통령은 한 번 마음먹으면 끝까지 가는 스타일"이라며 "지금 대통령의 시선이 가 있는 곳은 개각도 총선도 아니다. 오로지 민생 법안 처리에 꽂혀 있다"고 했다.

박근혜(가운데) 대통령이 18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전국 상공회의소 의장단 초청 오찬장에 입장하고 있다. 박 대통령은 이날“경제 활성화를 위한 골든타임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구조 개혁과 경제 활성화를 위한 핵심 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지 않아 속이 타들어가는 심정”이라고 했다. 왼쪽부터 박용만 대한상의회장, 박 대통령, 이병기 대통령비서실장,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그와 같은 박 대통령의 심중은 18일 청와대에서 열린 전국상공회의소 회장단과의 오찬에서도 드러났다. 박 대통령은 이날 "핵심 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지 않아 속이 타들어가는 심정"이라며 "내년 각종 악재를 이겨내기 위한 대비를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박 대통령은 또 "저도 편안하고 쉽게 대통령의 길을 갈 수도 있다"며 "그러나 국민을 위해 이러한 것을 방치하고 갈 수 없다는 생각에 연일 애끓는 호소를 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참석자 중에는 "대통령이 저렇게까지 절박한가"라며 눈시울을 붉힌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지난 16일 청와대에서 경제관계장관회의를 주재할 때도 박 대통령은 개각을 전혀 언급하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개각 대상인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게는 "마지막까지 고생이 많으시네요"라고만 했다고 한다. 그날 박 대통령은 내년도 대외 경제 여건의 악화를 언급하면서 리스크 관리와 컨틴전시 플랜(contingency plan·비상계획)의 마련도 강조했다.

이를 두고 청와대에서는 "개각이 12월 말까지 늦어지는 것을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다. 이번 개각은 5개 부처 장관들의 총선 출마에 따른 것이다. 이들의 사퇴 시한은 내달 14일이고 후임 장관 청문회는 최소 3주 정도 걸린다. 역산(逆算)하면 23일 정도에는 개각이 이뤄져야 업무 공백 없이 장관을 교체할 수 있다. 그런데도 '12월 말 개각' 얘기가 나오는 것은 일시적인 장관 공백도 감수할 수 있다는 뜻이다.

상황이 이렇기 때문에 청와대 참모나 친박 핵심들도 박 대통령에게 '개각 시기'에 대해 의견을 내기가 어렵다고 한다. 또 다른 청와대 관계자는 "국회의장이 단칼에 직권상정을 거부한 것에 대해 대통령이 상당히 실망했다"면서 "그런 대통령에게 '개각은 언제 하실 것이냐'고 묻기가 아직은 어렵다"고 했다.

친박들도 "더 이상은 대통령에게 '최경환 부총리를 빨리 당으로 복귀시켜 내년 총선을 앞두고 역할을 하도록 하자'고 말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했다. 친박 진영에서 "TK(대구·경북) 물갈이' 차원에서 청와대 수석·비서관 출신을 투입했는데 막상 그것도 순조롭진 않다"는 말도 흘러나오고 있다. 개각 대상인 정종섭 행정자치부 장관의 경우, 대구 출마가 예상되고 있다.

개각의 밑그림은 이미 완성돼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후임 장관들을 누구로 할지는 대통령의 머릿속에 다 정리돼 있는 것 같다. 복수의 인사안(案)이 마련돼 있고 언제든 명단이 내려올 수 있는 단계로 보인다"고 했다.

집권 4년차 경제팀을 이끌게 될 후임 경제부총리로는 새누리당 유일호 의원과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유력 후보로 꼽히고 있다. 내년 총선과 이후 6월 여당의 지도부 개편 때까지 당·청(黨靑) 관계를 생각할 때는 정치인 출신인 유 의원이, 조직·업무 장악력 측면에서는 관료 출신의 임 위원장이 앞서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준경 KDI 원장도 거명된다.

후임 사회부총리에는 당초 학자 출신인 이준식 전 서울대 부총장, 임덕호 전 한양대 총장이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3선(選) 의원 출신으로 국회 교육위원장을 지냈던 권철현 전 주일대사도 최종 후보군에 들어간 것으로 전해졌다.

행정자치부 장관 후보로는 정재근 행자부 차관, 정진철 청와대 인사수석, 이승종 지방자치발전위원회 부위원장, 홍윤식 전 국무조정실 국무 1차장 등이 거론된다. 또 산업부 장관에는 주형환 기획재정부 1차관, 추경호 국무조정실장, 이관섭 산업부 1차관, 김재홍 KOTRA 사장 등이 후보군을 형성하고 있다고 한다. 여성가족부 장관에는 새누리당 강은희 의원의 발탁이 점쳐지는 가운데 '새 인물 검토설'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