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짚신 장수 아들과 우산 장수 아들을 동시에 둔 부모 심정이라고나 할까요."
최근 만난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는 이렇게 말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법무부의 '사법시험 4년 유예' 발표와 관련한 얘기를 나누던 중이었다. 부장판사의 아들 둘 가운데 맏이는 지금 로스쿨 학생이고, 둘째는 사법시험 준비를 하는 고시생이다. 그는 "요즘 로스쿨생들과 사시준비생들이 서로 원수처럼 으르렁거리는 통에 누구 편도 못 들겠고, 집에서도 말 한마디가 조심스럽다"고 했다.
이달 3일 법무부가 당초 2017년 폐지키로 한 사법시험을 2021년까지 4년 더 실시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한 이후, 로스쿨과 사시 준비생들이 사생결단식 대결로 치닫고 있다.
전국 25개 로스쿨 재학생들은 학사일정을 거부하고 거리로 나섰다. 로스쿨생 6000여 명이 지난 10일 경기 과천의 법무부 청사 부근에서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다음 달로 예정된 변호사시험을 거부하겠다는 뜻으로 '근조(謹弔)'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시험 응시표를 불태웠다. 로스쿨생들은 앞서 집단 자퇴서를 제출했고, 지난 12일 실시된 검찰 실무시험도 거부했다. '사시 4년 유예' 방침을 발표한 법무부 관계자의 퇴진을 요구하는 1인 시위도 진행되고 있다.
사시 준비생들도 다르지 않다. 지난 7일 사시준비생들이 서울대 정문 앞에서 '사법시험 존치'를 외치며 삭발식을 했다. 이들은 사시를 존치하는 법안을 국회에서 통과시키라면서 국회와 법원 앞으로 몰려가 시위를 했다. 또 로스쿨 측의 집단 행동에 불참하면 불이익을 주겠다고 한 서울대·한양대 로스쿨 학생회 임원들을 업무방해와 강요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양측의 교수들도 가세했다. 로스쿨 교수들은 "법무부가 주관하는 사법시험과 변호사 시험 출제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로스쿨이 없는 대학의 법학과 교수들도 반박 성명을 내며 맞섰다. 로스쿨 출신 변호사들은 로스쿨 편을 들고, 사시 존치를 주장해 온 대한변호사협회 집행부는 연일 로스쿨 측을 비난하고 있다. 법조계가 '로스쿨파(派)'와 '사시파'로 편을 갈라 힘겨루기에 나선 상태다.
부장판사는 "한 가지는 꼭 짚고 넘어가고 싶다"고 했다. 그는 "무엇보다 법조인이 되기를 꿈꾼다는 로스쿨생과 사시 준비생들이 집단행동부터 하고 나선 것은 큰 문제"라며 "예비 법조인들이 극단적인 말과 행동을 앞세운다면 국민은 법조계를 자기 욕심이나 채우는 이익단체쯤으로 여기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 "이번 사태의 피해는 결국 로스쿨생과 사시준비생 모두 입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번 사태가 1990년대 중반 한약조제권 관련 법개정 문제를 둘러싸고 한의사와 약사들이 극한 대립했던 '한약 분쟁'의 전철을 밟지 않을까 우려했다. 한약 분쟁은 한의대와 약대 학생들이 거리로 나서면서 한의대생 1000여 명이 집단 유급하는 사태로 번졌다.
대법원은 지난 10일 이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국회와 대법원·법무부·로스쿨 등 관련 기관들이 참여하는 협의체 구성을 제안한 상태다. 최종적으로는 국회 입법(立法)을 통해 결정될 문제다. 그러나 내년 4월 총선을 앞둔 국회가 이 문제 해결에 나설 가능성은 거의 없다. 부장판사는 이런 상황이 답답한 듯 거듭 한숨을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