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안 발의 건수는 지난해와 비슷
성적표 '가결률' 19% 그쳐‥여야 대립으로 국회 공전한 탓
올해 국회에서는 본회의 마지막 날인 9일까지 4400여건의 법안이 발의됐다. 지난 정부의 연평균 발의건수(3460건)를 웃돌았지만, 이 중 본회의를 통과해 입법화 된 법안은 5분의 1도 채 되지 않았다.
성과가 없었던 건 아니다. 부정청탁 금지법(김영란법) 도입, 종교인 소득세 과세, 군단급 보통군사법원 설치 등 오래 논의돼 왔으나 논란이 많아 지지부진했던 법안들이 통과됐다. 그러나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기업활력제고특별법(원샷법), 노동개혁 5대 법안 등 경제를 살리는 데 필수적인 법안들은 올해도 재벌 특혜, 노동 개악 등 논란으로 정기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면서 연내 처리가 불투명해졌다.
◆ 법안 발의 건수 역대 최대…가결률은 하락 추세
10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박근혜 정부 집권 3년차인 올해 발의된 법안 건수(의원발의+정부제출)는 4433건이다. 출범 첫해(5488건) 대비로는 1000건 가량 감소했지만, 지난해(4346건)와 비슷한 수준이다. 이명박 정부에서 연간 법안 발의 건수가 줄곧 3000건 대였던 것을 감안하면 여전히 많다.
그러나 이 중 국회를 통과한 법안은 834건으로 가결률은 18.8%에 불과했다. 지난해엔 4346건의 법안이 발의되고 1627 건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가결률은 37.4%였는데 올해엔 그 절반에도 못 미쳤다. 가결률은 이명박 정부 집권 기간인 2008년에서 2012년까지 51.4%에서 40.2%로 하락했고, 현 정부 들어서는 더 빠르게 떨어지고 있다.
지난해에는 세월호 참사로 여야가 대립하며 5~9월 150일간 법안을 한 건도 처리하지 않아 가결률 하락에 영향을 미쳤다. 올 들어서는 상반기 메르스, 하반기 국정교과서 논란으로 국회가 공전하며 가결률이 저조했다. 게다가 쟁점법안을 둘러싸고 여야의 밀고 당기기가 격화되며 ‘흉작 국회’였다는 오명을 피할 수 없게 됐다.
다만 가결률 하락은 법안 수 자체가 크게 늘어나는 데 따른 추세적인 현상이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위원회 의안심사과정에서 대안이 반영되며 폐기되는 법안이 늘고 이에 따라 위원회 대안도 증가, 가결률 하락으로 이어지고 있다”며 “가결률을 기준으로 (국회의원의) 의정 활동을 평가하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전진영 입법조사처 입법조사연구관은 "국가마다 제도가 달라 일률적 비교는 쉽지 않지만, 우리나라와 유사한 대통령제인 미국의 가결률이 5%라는 점을 감안하면 현재 국회의 가결률이 크게 낮은 편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 김영란법 통과에도 위헌 여부 등 논란…종교인 과세는 2018년부터
올해 국회의 '간판 입법'으로는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 있다. 여성 최초 대법관을 지낸 김영란 전 대법관이 국민권익위원장 시절 제안한 것으로 지난 3월 국회를 통과해 내년 9월 시행된다. 공직자, 언론사 임직원, 사립학교·유치원 임직원, 사학재단 이사진 등이 직무 관련성이나 대가성과 무관하게 100만원이 넘는 금품이나 향응을 받으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금품가액의 최대 5배에 상당하는 벌금이 부과된다. 본인은 물론 배우자가 받은 금품도 신고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형사처벌한다.
이 법안은 여야 합의로 본회의를 통과했지만 이틀 만에 대한변호사협회를 중심으로 헌법소원이 제기됐다. 부정 청탁의 개념이 모호한 점, 배우자의 금품수수를 공직자가 신고하도록 의무화 한 점, 언론사 임직원이 포함된 점 등은 위헌 소지가 있다는 입장이다. 헌법재판소는 10일 위헌 여부를 가리는 공개 변론을 개최, 향후 경과가 주목된다. 이 외에도 금품수수 대상에 농축수산물을 포함할지 여부 등 세부 규칙을 담은 시행령을 마련하지 못한 실정이다.
종교인 과세는 47년만에 입법화에 성공했다. 지난 2일 종교인의 소득을 소득세법상 '기타소득'으로 분류해 과세 근거를 마련하고, 소득 규모에 따라 과세가 제외되는 '필요 경비 공제율'을 차등화하는 법안이 본회의를 통과했다.
그러나 시행 시기를 당초 내년에서 2018년으로 2년 유예해 과세 의지가 빈약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일고 있다. 내년 4월 총선을 앞둔 여야가 종교계의 눈치를 보며 차기 정부로 숙제를 넘겼다는 것이다. 또 종교인들이 정기 소득이 있음에도 일반 근로자와 달리 기타소득으로 적용받는 것은 형평성 논란을 야기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발생한 윤일병 폭행 사망 사건을 계기로, 군단급 보통군사법원 설치 등을 규정한 '군사법원법 개정안'도 의결됐다. 현재 사단급에 설치돼 있는 보통군사법원을 폐지해 군단급으로 격상하고, 국방부 소속 국방부검찰단을 설치하는 게 법안의 골자다.
◆ 서비스발전법 4년째 국회 계류..원샷법·노동개혁도 난항
서비스산업발전법은 제조업 대비 낙후된 서비스산업에 대해 연구개발(R&D) 투자 인센티브를 지원하고 규제 완화 기반을 마련하자는 내용의 법으로, 여야 갈등이 지속되는 대표적 법안이다. 4년째 국회 계류 중인 법안으로 이번에도 통과에 실패했다.
여야는 이 법 적용 대상 분야를 법에 명시하는 문제를 두고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갈등의 핵심은 서비스산업 중 보건·의료 분야에 대한 법 적용 여부이다. 야당은 서비스업 적용 대상 분야에서 보건·의료 분야를 원천적으로 배제해야 '의료 영리화' 여지가 없을 것으로 본다. 그러나 여당은 서비스산업에 기본적으로 보건·의료 분야를 포함하되, 다른 법률과의 상대적 관계를 조정해 영리화 우려를 해소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조선·철강 등 공급 과잉 업종을 대상으로 자발적인 구조조정을 한시 지원하는 원샷법도 연내 정기 국회 처리가 불발됐다. 야당은 이 법안에 대해 대기업에 특혜를 주는 법이라며 적용 대상에서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을 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법은 소관 상임위원회인 산업통상자원위원회에서 심의 일정조차 잡혀 있지 않다.
노동개혁 5개 법안(산재법·고용보험법·근로기준법·기간제법·파견법) 처리도 무위로 돌아갔다. 야당은 이들 법안 중 특히 비정규직 사용 제한 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늘리는 기간제법과, 파견 업종을 확대하는 파견법이 '비정규직 양산법'이라며 강경 반대하고 있다. 이 외에 사회적경제기본법, 대·중소기업상생협력촉진법, 테러방지법, 북한인권법 등도 여야 대치로 올해 정기국회 처리가 무산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