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 코트에 '도둑들'이 떴다. 올 시즌 프로농구 판도를 뒤흔들고 있는 안양 인삼공사다. 지난 시즌 리그 8위였던 인삼공사는 9일 현재 다섯 계단 뛴 리그 3위(18승9패)를 달리고 있다. 홈에서 벌인 12경기를 모두 승리해 안방을 뜨겁게 달궜다.
인삼공사의 고공 행진 비결은 뭘까. 틈만 나면 상대의 공을 뺏는 스틸이다. 인삼공사의 경기당 스틸은 9.1개로 리그 평균(6.9개)을 훌쩍 넘는다. 경기 시간이 8분 더 긴 NBA (미 프로농구)의 이 부문 상위권 팀(9~10개)과 비슷한 수준이다.
스틸의 역설도 있다. 무리하게 스틸을 시도하면 자기 마크맨을 놓쳐 쉬운 득점을 주거나, 파울을 저지를 가능성도 있다. 일부 지도자는 '공 뺏으려고 하지 말고(스틸 시도하지 말고) 상대를 따라붙어라'고 선수들에게 가르친다. 게다가 스틸을 위해 선수 2~3명이 상대 한 명에게 붙는 '더블팀 수비'를 하다 보면 다른 곳에서 오픈 찬스가 나는 일도 벌어진다. 이 때문에 인삼공사는 올 시즌 리그에서 팀 실점(82.3점)이 가장 많다.
[안양 KGC 인삼공사 스틸 비결은 기습적인 '겹수비(더블팀)']
하지만 김승기 감독 대행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스틸 수비로 생긴 허점을 공격으로 갚으면 된다는 것이다. 스틸 이후 상대 숫자가 적은 상태에서 이어지는 속공은 성공률이 70~80%에 달해 농구에서 자유투 다음으로 확률이 높다. 인삼공사는 올 시즌 팀 속공 성공 횟수가 6.1번으로 리그 1위다. 다른 팀보다 평균 2~3번가량 더 넣었다. 그 결과 인삼공사의 올 시즌 리그 팀 득점은 전체 1위(83.9점)를 달리고 있다. 지난 시즌(72.4점)보다 11.5점이나 올랐다.
스틸 개인 순위도 당연히 인삼공사 선수들이 독차지하고 있다. 동갑내기 가드인 이정현과 박찬희가 각각 1위(경기당 1.89개)와 2위(1.71개), 포워드인 주장 양희종이 3위(1.56개)다. 셋 모두 팔이 긴 '고릴라 스타일' 선수다. 양희종의 경우 양팔을 옆으로 펼친 '윙 스팬(wing span)'이 202㎝로 키(194㎝)보다 8㎝ 길다. 양희종은 "감독님은 스틸을 노리다 내주는 슛은 한 경기에 많아야 2~3번에 불과하니 더 적극적으로 공을 뺏으라고 이야기하신다"며 "선수들도 다들 스틸의 재미를 알게 됐다"고 했다. 속공 상황에서의 노 룩(no look) 패스와 덩크슛 등 평소에 보기 어려운 묘기도 자주 나와 팬들도 열광한다.
인삼공사 스틸의 비결은 기습적인 '겹수비(더블팀)'가 첫손에 꼽힌다. 먼저 자세가 높거나 드리블이 불안한 선수에게 공이 연결되도록 '덫'을 놓고, 타깃 선수가 볼을 받으면 순간적으로 2~3명이 둘러싸(더블팀 수비) 손을 뻗는다. 김승기 인삼공사 감독 대행은 "우리팀엔 코트의 코너, 45도, 정면 등 모든 곳에 약속된 더블팀 수비 움직임이 있다"고 했다. 김 감독 대행은 "선수들이 올 시즌 홈경기 15연승을 달성하면 유니폼 상의를 벗고 춤을 추기로 했다"며 "팬들이 원한다면 나도 동참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