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디아 고처럼 그립 짧게 쥐면

"클럽을 짧게 쥐고 스윙하면 거리는 5~10야드쯤 줄어들지 모르겠어요. 그렇지만 공을 더 정확하게 맞힐 수 있고, 방향성도 훨씬 좋아지죠. 그러니까 실제로는 더 멀리 치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어요."(여자골프 세계 1위 리디아 고)

"원래 방망이를 짧게 잡는 편인데 손가락까지 다쳤으니 공을 정확하게 맞히기만 하자는 생각으로 치기 시작했지요. 그런데 홈런까지 나오더라고요."(프로야구 두산 정수빈)

리디아 고가 그립을 아주 짧게 쥔 채 벙커샷을 하는 모습. 리디아 고는 드라이버도 그립을 짧게 잡고 정확성 위주로 친다. 그는“어릴 때부터 하나의 클럽으로 그립 길이를 조절해가며 다양한 거리를 확보하는 훈련을 했다”고 말했다.

리디아 고는 다른 선수보다 드라이버를 보통 1인치(2.54cm) 이상 짧게 쥐고, 벙커 샷이나 어프로치 샷을 할 때는 아예 그립 가장 아래쪽을 쥘 때도 있다.

키 165cm로 크지 않은 체격에 이렇게 클럽까지 짧게 쥐고 치는데 거리는 평균 이상이다. 올 시즌 평균 드라이브 샷 거리가 250.9야드(60위)다. 페어웨이 적중률은 75.44%(43위). 아이언 샷 거리도 평균 이상인데 그린 적중률은 무려 77%(2위)다.

리디아 고의 탁월한 정확성의 비결은 짧은 그립이라는 얘기다. 골프 매거진에 따르면 그립을 1인치 짧게 쥐면 다른 조건이 같을 경우 거리가 드라이버는 10야드(9.14m), 아이언은 7야드 줄어든다. 그런데 리디아 고는 스위트 스폿에 정확하게 공을 맞히는 능력으로 짧아지는 거리를 상쇄한다. 스매시 팩터(smash factor)는 클럽 헤드의 스피드로 볼 스피드를 나눈 값이다. 스윙 에너지가 얼마나 효율적으로 볼에 전달되는지 보여주는 지표다. 리디아 고는 이 수치가 LPGA 투어 최정상급인 1.50 이상이다. LPGA 투어 평균 1.48보다 0.02 이상 높다. 스매시 팩터가 0.02 높으면 드라이버 비거리가 약 5야드 정도 늘어난다. 이런 원리로 그립을 짧게 쥐어도 거리 손실이 줄어든다.

두산 정수빈은 올해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 왼손 검지를 다치는 바람에 이후 경기에는 평소보다 방망이를 짧게 잡고 타석에 섰다.

정수빈은 크지 않은 체격(175cm·70kg)으로 홈런 타자도 아니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한국시리즈에서 홈런을 뿜어내고 MVP까지 차지했다. 한국시리즈 도중 왼손 검지를 다치는 바람에 짧게 쥔 방망이에서 승부를 가르는 홈런이 터졌다. 공을 정확하게 맞히는 게 다른 무엇보다 더 중요하다는 걸 보여주는 대목이다.

리디아 고는 어떤 클럽이든 그립 전체를 활용한다. 7번 아이언으로 8번이나 9번 아이언 거리를 정확히 칠 수 있다. 이를 그립 길이로 조절한다는 것이다. 리디아 고는 "어려서 아버지에게 골프를 배울 때부터 습관이 됐다"고 한다. 지금은 골프를 중단했지만 '제 2의 타이거 우즈'로 기대를 모았던 재미교포 골퍼 앤서니 김(30)도 그립이 짧은 편이었다. 그는 거의 모든 클럽 그립을 2인치(5.08cm) 짧게 쥐었다. 그런데도 드라이브샷 평균 거리가 300야드를 넘겼다. 그가 밝힌 장타의 비결도 "그립을 짧게 쥐고 백스윙을 스리쿼터(4분의 3)로 하되, 정확성을 높이는 것"이었다.

그러면 처음부터 샤프트를 잘라서 치면 더 좋지 않을까. 임경빈 골프아카데미 원장은 "그렇게 되면 클럽 전체의 밸런스가 달라질 수도 있다"며 "원래 그립에서 조금 내려잡게 되면 심리적 안정감을 주는 효과도 크다"고 했다.

클럽을 있는 대로 길게 쥐고 힘껏 휘둘러도 공을 정확하게 맞히지 못하면 얼마나 허무한 결과가 나오는지 많은 주말 골퍼가 경험한다. 클럽을 1인치나 2인치 짧게 쥐고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 한번 시험 삼아 해보시라고 리디아 고는 권했다.

성적 확 오른 박성현·조윤지처럼… 타수 한번 줄여봅시다

주말 골퍼들 '그녀들의 상승 비결' 배워볼까요

'장타자' 박성현(22)은 지난 시즌보다 라운드당 평균 타수가 2타 줄었다. 73.64타를 치다가 올해는 71.64타를 친다. 정상급 프로 골퍼가 2타를 줄였다는 것은 주말 골퍼로 따지면 100대 타수를 치다가 80대 타수에 진입한 것 같은 놀라운 변화다.

올해 8홀 연속 버디 신기록을 세운 조윤지(24)도 '기량발전상'을 받을 만하다. 지난해 72.54타에서 올해 71.24타로 1.3타를 덜 쳤다. 줄어든 타수만큼 지갑은 두둑해진다. 박성현은 올해 6억5619만원을 벌어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상금 랭킹 2위를 달리고 있다. 지난해 상금 1억2058만원의 5배 이상이다. 조윤지도 지난해보다 4억원 이상 늘어난 6억3831만원으로 상금 랭킹 4위다. 이들은 13일 개막하는 KLPGA 투어 시즌 최종전 조선일보-포스코챔피언십(총상금 7억원·우승상금 1억4000만원)에서도 우승 후보로 꼽힌다. 이번 대회는 경기도 용인 레이크사이드CC 서코스에서 열린다.

박성현과 조윤지는 어떻게 중위권 선수에서 톱 골퍼로 변신한 것일까. 이야기를 들어보니 주말 골퍼가 따라 하면 딱 좋을 만한 과정을 거쳤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사진=KLPGA, 그래픽=송윤혜 기자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박성현은 지난해 지독한 OB(아웃오브바운즈) 공포증에 시달렸다. 한 라운드에 두세 방씩 '우정 샷'을 날리는 주말 장타자와 비슷했다. 지난해 한화금융클래식에서는 4번홀(파5홀)에서 OB 3개를 내고 12타를 쳤다. 그때 기록한 라운드 스코어가 91타였다. 드라이버 입스(yips·샷 실패 불안증세)가 호환마마보다 무섭다는 말을 실감했다.

지난 동계훈련 때 드라이버샷이 가장 좋았던 중학교 때 스윙 동영상을 하루에도 수십 번씩 보면서 샷 연습을 했다고 한다. 한 달쯤 지나니 문제점을 깨달았다. 스윙이 시작부터 너무 빨랐고, 백스윙 크기도 매번 달랐다. 박성현은 "좋았던 때 스윙은 어떤 동작을 하더라도 늘 손 위치가 양 어깨 안에 있었다"고 했다. 그는 "백스윙을 천천히 시작해서 부드럽게 친다는 느낌으로 바꾸니, 스윙 스피드와 백스윙 크기가 일정해지면서 OB가 나지 않았다"고 했다. 거리는 3야드 정도 줄었지만 여전히 장타 부문 1위(254.81야드)다. 이렇게 티 샷이 안정되자 그린 적중률이 지난해 38위(68.74%)에서 6위(76.47%)로 급상승했다. 박성현은 "정확성이 떨어지는 장타는 오히려 독이 된다"며 "주말 골퍼도 무리하게 거리를 내려 하지 말고, 티샷은 다음 샷을 잘하기 위한 과정이라는 생각으로 부드럽게 하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조윤지는 데뷔 첫해인 열아홉 살 때 처음 우승한 뒤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해 '만년 신동'으로 불렸다. 잘 맞을 때는 몰아치기에 능했지만 라운드별로 샷이 들쭉날쭉했다. 지난해 10월 새 스윙 코치 안성현 프로와 만나 드라이버부터 아이언까지 샷의 구질을 모두 페이드(fade·오른손잡이 경우에는 공이 똑바로 날아가다 오른쪽으로 살짝 휘는 샷)로 바꾼 게 맞아떨어졌다. 비거리는 줄었지만 샷의 일관성이 크게 높아졌다. 130야드 이내에서 친 아이언 샷은 홀 옆에 딱딱 붙었다. 퍼팅도 무릎을 살짝 구부려 두 팔이 움직이는 동작을 원활하게 하니 스트로크의 정확성이 몰라보게 좋아졌다. '버디 퀸'으로 거듭난 그는 올해 5년 만에 투어 2승째를 올렸다. 물론 구질이 페이드인지 드로(draw·왼쪽으로 살짝 휘는 샷)인지가 중요한 건 아니다. 세계 1위 리디아 고는 오히려 구질을 드로로 바꿔 비거리를 늘리면서도 정확성은 유지했다.

조윤지는 "연습할 시간이 거의 없는 주말 골퍼라면 어드레스 때 어깨와 발이 자신이 공을 치려는 방향과 일치하게 잘 섰는지 체크하는 습관만 들여도 큰 실수는 줄일 수 있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