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식 KAIST교수·뇌과학

뉴욕 곳곳엔 나치 깃발이 휘날리고 사람들은 서로에게 "Heil Hitler(히틀러 만세)" 외치며 인사한다. 도시에서 유대인이 사라진 지 오래됐고, 캘리포니아를 포함한 미국 서부는 일본군이 점령 중이다.

얼마 전부터 미국에서 방송 중인 '더 맨 인 더 하이 캐슬(The Man in the High Castle)'이라는 드라마 내용이다. 인터넷 쇼핑몰 아마존이 인터넷으로 스트리밍 서비스 중인 이 작품은 SF 작가 필립 K. 딕의 1962년 소설이 기반이다. 필립 딕은 대체 역사(alternative history)를 제시한다. 만약 2차대전 때 독일이 미국보다 먼저 원자폭탄을 개발했다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가 아닌 워싱턴 D.C.에 첫 원자탄이 떨어졌을 것이고, 미국은 항복했을 것이다. 미 동부는 대독일제국의 영토가 되고, 서부는 일본 태평양국가라는 이름의 괴뢰국으로 변신한다.

우리의 현실은 충분히 가능할 수도 있었을 수많은 대체 현실 중 하나다. 한 사람의 생각, 한 정부의 결정, 한 날의 우연이 역사를 결정한다. 뉴턴이 없었더라도 누군가 언젠가는 뉴턴의 법칙을 발견했을 것이고, 스티브 잡스 대신 누군가가 스마트폰 비슷한 것을 발명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무한한 대체 현실을 단 하나뿐인 실제 현실로 전환하는 힘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철학자 쇼펜하우어의 말대로 인간의 상상력과 의지에 있는지도 모른다. 대한제국이 일본을 식민지화하고, 일본 왕족을 몰살하고, 도쿄에 있는 에도성을 불도저로 밀어버렸을 대체 역사는 자연의 법칙 때문이 아니라 우리의 의지와 상상력이 부족해 실제가 되지 못했을 뿐이다.

과거는 과거다.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대체 역사가 아니라 대체 미래다. 다시 권위주의와 빈곤으로 되돌아간 후진국 대한민국, 아니면 다양성과 개인의 자유를 절대적으로 존중하며 최첨단 안보 능력을 갖춘 진정한 선진국 대한민국. 이 모두 우리의 상상력과 의지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