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청나라 때 왕지부(王之鈇)가 호남 지역 산중 농가의 벽 위에 적혀 있었다는 시 네 수를 자신이 엮은 '언행휘찬(言行彙纂)'에 실어놓았다. 주희(朱熹)의 시라고도 하는데 지은이는 분명치 않다.

첫째 수. "까치 짖음 기뻐할 일이 못 되고, 까마귀 운다 한들 어이 흉할까. 인간 세상 흉하고 길한 일들은, 새 울음소리 속에 있지 않다네.(鵲噪非爲喜, 鴉鳴豈是凶. 人間凶與吉, 不在鳥聲中.)" 까치가 아침부터 우짖으니 기쁜 소식이 오려나 싶어 설렌다. 까마귀가 깍깍 울면 왠지 불길한 일이 닥칠 것만 같아 불안하다. 새 울음소리 하나에 마음이 그만 이랬다저랬다 한다.

둘째 수. "밭 가는 소 저 먹을 풀이 없는데, 창고 쥐는 남아도는 양식이 있네. 온갖 일 분수가 정해있건만, 뜬 인생이 공연히 홀로 바쁘다.(耕牛無宿草, 倉鼠有餘糧. 萬事分已定, 浮生空自忙.)" 죽어라 일하는 소는 늘 배가 고프고, 빈둥빈둥 노는 창고 속 쥐는 굶을 걱정이 없다. 세상일이 원래 그렇다. 타고난 분수가 정해져 있는데 아등바등 뜬 인생들이 궁리만 바쁘다. 애써도 안 될 일을 꿈꾸느라 발밑의 행복을 놓친 채 한눈만 판다.

셋째 수. "물총새는 깃털 귀해 죽음당하고, 거북은 껍데기로 인해 목숨을 잃네. 차라리 아무것도 이루지 않고, 편하게 평생 보냄 더 낫겠구나.(翠死因毛貴, 龜亡爲殼靈. 不如無成物, 安樂過平生.)" 물총새는 제 고운 비췻빛 깃털 때문에 사람들이 노리는 표적이 된다. 거북은 등 껍데기로 장식하고 배딱지로 점치려고 사람들이 잡아가 목숨을 잃고 만다. 애초에 아무런 지닌 것이 없었으면 타고난 제 수명을 다 누릴 수 있었을 텐데.

넷째 수. "참새는 모이 쪼며 사방 살피고, 제비는 둥지에서 딴마음 없네. 배포 크면 복도 또한 크게 되지만, 기심(機心)이 깊고 보면 재앙도 깊네.(雀啄復四顧, 燕寢無二心. 量大福亦大, 機深禍亦深.)" 참새와 제비가 먹는 데야 얼마나 먹을까? 그래도 살피고 가늠해서 조심조심 건너가니 큰 근심이 없다. 크게 왕창 한탕 해서 떵떵거리고 사는 것이 좋아 보여도 한순간에 재앙의 기틀을 밟으면 돌이킬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