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은 건강 악화 때문에 26일 고(故) 김영삼 전 대통령 영결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막판까지 고심하다가 주치의인 서울대병원 서창석 교수의 의견을 받아들인 박 대통령은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을 찾아 8분간 유가족들을 위로하고 발인 모습을 지켜봤다.

박근혜 대통령이 26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의 유해가 운구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박 대통령은 이날 피로 누적과 감기몸살로 국회에서 거행된 영결식에는 참석하지 못했다.

이날 박 대통령은 얼굴이 다소 부은 초췌한 모습이었다. 서창석 교수에 따르면, 박 대통령은 만성 피로에다 고열과 인후염을 동반한 감기 몸살 증세를 보이고 있다. 서 교수는 "특히 피로가 누적돼 면역력이 감소해 있다"고 했다. 그는 "좀 쉬면 나아지고 일정이 있으면 힘들어지는 상태"라며 "이러다간 내주 순방을 못 갈 것 같아 강력하게 쉬라고 권고했다"고 했다. 박 대통령은 오는 29일부터 7일간 프랑스 파리(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와 체코 프라하를 순방할 예정이다. 서 교수는 "안정이 필요한데 오늘 같은 추운 날씨에 1시간 30분 동안 실외에 있기에는 무리"라고 했다.

현재 박 대통령은 발목도 부어 있다고 한다. 지난주 터키·필리핀·말레이시아 순방의 여파로 보인다. 터키에선 파리 테러 문제로 회의가 자정을 넘기는 일도 있었다. 청와대 관계자는 "내주 순방만 아니라면 영결식 참석을 강행할 수도 있었는데…"라고 했다.

'면역력 저하'로 이어진 박 대통령의 만성 피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특히 장거리 외국 순방이 겹치면 대통령의 건강은 급격하게 안 좋아졌다. 예방주사를 맞기 때문에 유행하는 독감은 피할 수 있지만 감기 몸살 등으로 탈이 나는 경우가 꽤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4월 중남미 순방 때는 위경련과 인두염 증상을 보여 귀국한 뒤 1주일간 대외 활동을 못 했다. 작년 3월 네덜란드 핵안보정상회의 때는 감기 몸살로 현지에서 하루 일정을 거의 다 취소했다. 올 들어 대부분의 순방에서 박 대통령이 링거를 맞지 않은 때가 드문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주 터키·필리핀·말레이시아 순방도 감기 몸살 기운이 있는 상태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박 대통령은 9월 이후 베이징·뉴욕·워싱턴을 다녀왔고 서울에서 한·중·일 정상회담을 갖는 등 중요한 외교 행사를 잇따라 치렀다.

국회의원 시절 박 대통령은 20년 넘게 단전호흡과 요가 등으로 건강관리를 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2년 12월 당선 직후 서울 아산병원에서 받은 정밀 건강검진에서 '양호하다'는 판정을 받기도 했다. 청와대의 한 인사는 "대통령이 된 이후 건강 악화의 상당 부분은 '너무 꼼꼼한 성격'에 기인한다"고 했다. 한 참모는 "대통령은 순방 때 10분짜리 행사나 100분짜리 행사나 똑같은 강도로 준비한다"면서 "현지에서도 보고서를 읽느라 대통령의 수면 시간은 기껏해야 3시간 정도일 것"이라고 했다. 이 관계자는 "지난주 터키 등의 순방도 도착 첫날 일정을 모두 비우고 15개국 넘는 양자회담 요청을 대부분 거절하면서 조정했는데 결과적으로 별 소용이 없었던 셈"이라고 했다.

외교라인 관계자는 "대통령은 각 부처에서 '행사 참석안(案)'이 올라오면 거절하지 않는 스타일"이라며 "그러다 보면 하나둘씩 (행사가) 늘어나게 된다"고 했다. 청와대 관계자들은 내주에 있을 프랑스와 체코 순방도 걱정하고 있다. 특히 체코 방문은 일정이 빡빡하다고 한다. 한 관계자는 "20여 년 만의 한국 대통령 방문이라 체코 정부가 많은 행사를 준비해 놓고 대통령 참석을 요청하고 있다"며 "환대하겠다는데 거절하기도 어렵고 대부분 대통령이 참석할 것 같다"고 했다.

올 3월 리콴유(李光耀) 전 싱가포르 총리 국장(國葬) 참석까지 포함하면 박 대통령은 취임 이후 모두 19번 해외 순방을 다녀왔다. 청와대 관계자는 "상당수를 심야나 새벽 시간에 귀국했고 대통령은 시차와 피로 때문에도 힘들어했다"며 "여유를 주기 위해 체류일을 늘릴 필요가 있을 때도 대통령이 '국민의 세금을 왜 낭비하느냐'고 할까 봐 아무도 그렇게 못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