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 전 대통령 생전에 그를 비판하며 야당 60년사(史)에서도 제외하려던 새정치민주연합이 김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전국민적 추모 분위기 속에서 김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를 바꿔 새정치연합 내부에서도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김 전 대통령의 '정치적 유산(遺産)'만 챙기려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새정치연합 혁신위원회에 30대 청년 몫으로 참여했던 이동학 전 혁신위원은 25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야당 60년사에서 김영삼을 빼놓고 얘기가 가능한가. 우리가 만든 역사가 김대중 노무현만의 결과인가"라며 "불과 한 달 전 손혜원 위원장께서 만든 당 대표실 백드롭을 놓고 벌어진(김영삼 상부 위치, 노무현 김대중 하부 위치) 논란을 우리는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라고 했다.
앞서 지난 9월 9일 새정치연합 지도부 내에서는 창당 60주년 관련 당 대표 회의실 배경 현수막을 놓고 고성이 오갔다. 당시 현수막에는 '국민과 함께, 민주 60'이라는 문구를 중심으로 역사의 현장을 기록한 흑백 사진들이 배치됐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김영삼 전 대통령 등 상도동계 인사들의 거리행진 사진이 눈에 가장 잘 띄는 상단 중앙을 차지하고 있었다. 반면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진은 각각 좌·우측 하단 구석에 배치됐다.
이를 두고 지도부 내에서는 "누가 당 주인이냐" "누가 이렇게 만들었느냐"는 고성이 터져나왔다. 현수막을 디자인한 손혜원 홍보위원장에게도 비판이 쏟아졌다.
결국 현수막은 이틀 후인 9월 11일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이 각각 1997년·2002년 대통령 후보 시절 거리 유세하던 모습을 상단 정중앙에 배치한 것으로 교체됐다. 당초 문제가 됐던 김영삼 전 대통령의 모습은 아예 사라졌다.
그러나 새정치연합은 김 전 대통령 서거 이후 그를 '독재에 맞서 싸운 민주 투사' '위대한 지도자'라고 추켜세우며 김 전 대통령의 정신을 계승하겠다고 했다.
문재인 대표는 23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주승용 최고위원이 대독(代讀)한 메시지에서 "김영삼 대통령은 평생을 박정희, 전두환 군사독재에 맞서 싸운 민주 투사였다. 대통령 재임 당시에는 하나회 척결과 금융실명제 등 그 누구도 하지 못했을 과감한 개혁조치로 민주주의 새 장을 열었던 위대한 지도자였다"고 칭송했다.
또 "퇴임 이후에도 민주주의의 퇴행을 걱정하셨고, 스스로 그 어떤 형태의 독재와도 결코 타협하지 않았던 진정한 민주주의자였다. 그 위대한 업적과 숭고한 정신은 영원히 우리들 가슴 속에 살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 대표는 이어 "우리 당이 김영삼 대통령의 신념과 용기, 포용의 정신을 계승해 지금 대한민국이 처해 있는 심각한 정치적, 경제적 위기를 반드시 극복해내자"고도 말했다.
문 대표는 김 전 대통령의 '정치적 아들'을 자임하며 빈소에서 상주(喪主) 역할을 하는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서청원 최고위원을 비판하기도 했다. 그는 "독재를 찬양하면서도 독재와 맞섰던 김영삼 대통령의 정치적 아들을 자임하는 이율배반의 정치도 보고 있다"고 했다.
김 전 대통령의 민주화 투쟁을 부각시키면서 그 진정한 계승자는 야당인 자신들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종걸 원내대표는 24일 당 원내대책회의에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서청원 최고위원은 김영삼 대통령의 정치적 아들을 자처하면서 상주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정치적 아들이 아니고 유산만 노리는 아들 아닌가라는 의문을 낳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 전 대통령에 대한 새정치연합의 이 같은 갑작스런 태도 변화는 시류에 편승하려는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이동학 전 혁신위원은 "우리당 60주년 기념사관은 어떤 관점일까. 김영삼을 비판일색으로 채웠던 역사책을 YS서거 정국 때문에 고쳐쓰고 있는 현실 앞에. 우리는 과연 우리의 길을 갈 수 있는가"라며 "심각한 의심이 든다"고 했다. 그는 또 "유·불리 앞에서 취하고 버리고를 반복하는 우리당에, 국민이 매력을 느껴야할 이유가 대체 무엇인가"라며 "제발 줏대 좀 있어라"라고 했다.
그러나 이런 태도 변화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도 있다. 새정치연합 혁신위원을 역임한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25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새정치연합, 당 60주년 행사를 준비하던 시기 YS를 넣니 마니 하더니 이제 YS 추모 대열 전면에 나섰다. 잘한 일"이라고 했다. 조 교수는 또 "YS는 DJ와 노무현을 싫어했고 종종 무시하고 모욕했던 것 사실"이라면서도 "그러나 DJ와 노무현의 후예라면 YS의 손을 잡아야 한다. 새정치연합, YS의 '공'을 확대 계승하는 정당이 되길 바란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