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탄생 100주년이 되는 날이다. 최근 그를 기념하는 전시회와 세미나, 언론 보도가 부쩍 급증했다. 나라 경제가 성장 동력을 잃고 국내 기업들이 불경기를 돌파하지 못하고 있는 답답한 상황에서 대한민국 산업화의 거인을 재평가하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기업인 정주영의 삶은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한 한국 경제의 기적과 그대로 겹친다. 그는 75년 전 일제 식민지 말기 직원 2명을 데리고 서울 신설동에 자동차 수리 공장을 차리는 것으로 창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그 후 경부고속도로 건설(1970년)로 대한민국 산업화 과정에서 핵심적 물류 통로 역할을 수행한 인프라를 깔았고, 조선업 진출(1971년)로 한국 조선의 세계 1등 신화를 쓰기 시작했다. 또 '포니' 생산(1976년)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종횡무진하고 있는 한국 자동차 산업을 개척했다. 그가 가난과 폐허의 땅에 뿌린 씨앗은 지금에 이르러 현대자동차그룹을 비롯해 현대그룹, 현대중공업그룹, 현대백화점 등에서 직접 고용 인력만 21만명(2014년 기준)에 달하는 핵심 기업들로 성장했다.

요즘의 젊은이들은 '헬조선(지옥 같은 한국)'과 '흙수저(가진 것 없는 집안 출신)' 신세를 한탄하곤 한다. 하지만 정주영이야말로 '식민지 헬조선에서 태어난 흙수저'의 전형이었다. 강원도 통천 빈농(貧農)의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청소년 시절 '손톱이 닳도록' 일해도 달라지지 않는 사회를 증오했다. 그는 세 번의 가출 시도가 실패한 뒤 16세 되던 해 소 판 돈 70원을 훔쳐 가출해 막노동과 쌀가게 배달 일을 하며 자신의 꿈에 도전했다. 그의 85년 인생은 "이봐, 해봤어?"라는 말버릇으로 상징되는 도전 정신의 실험대였다. 그는 사회 모순을 탓하고 좌절하는 대신 내 손으로 세상을 뜯어고치겠다는 신념으로 산업화를 주도했다.

정주영은 혁신적 발상으로 기업 경영의 신천지(新天地)를 개척한 창조적 기업인이었다. 500원짜리 지폐(당시)의 거북선 그림 한 장을 보여주며 조선소를 건설할 외자(外資)를 조달했고, 폐(廢)유조선을 가라앉히는 방식으로 거대한 방파제 공사를 마무리하기도 했다. 그의 역발상 경영은 후대(後代) 경영인들이 배워야 할 창의성의 전범(典範)이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항상 나라 경제를 생각했다. 정주영이 울산 앞바다에 세운 현대중공업 조선소엔 '우리가 잘되는 것이 나라가 잘되는 것이며, 나라가 잘되는 것이 우리가 잘되는 것이다'라는 그의 어록이 큰 글씨로 쓰여 있다. 기업 성장과 국가 발전을 동일시하는 기업관을 평생 강조했다.

정주영뿐 아니다. 대한민국 산업 근대화의 기틀을 다진 창업 세대의 기업인들은 예외 없이 불굴의 도전 정신과 사업보국(事業報國)의 경영 철학을 실천했다. 삼성그룹 창업자 이병철은 과대망상이라는 해외 전문가들의 조롱을 뒤로하고 73세 나이에 반도체 투자를 시작했다. 호암은 "돈벌이하려면 반도체 말고도 많지만 국가적 사업이기 때문에 한다"며 반대 의견을 눌렀다. LG그룹(옛 럭키금성)의 창업주 구인회는 "국민 생활에 없어선 안 될 것부터 착수하라"며 치약·화장품 같은 생활용품 산업과 전자 산업을 개척했다. 우리는 지금 그들이 뿌린 씨앗들을 커다란 열매로 거둬들이며 세계 10위권의 경제력 아래서 그 혜택을 누리고 있다.

나라 경제가 저성장 국면에 빠져들면서 기업들 경영 실적도 악화되고 있다는 소식뿐이다. 이 시대 우리 경제에 가장 절실한 것이 이런 창업가들의 거침없는 도전 정신과 창의력이다. 창업 세대의 도전 정신과 혁신적 사고(思考)에 우리 기업들이 가야 할 방향에 대한 해답이 담겨 있다.

[[사설] 대통령의 국회 비판, 너무 잦고 너무 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