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金泳三) 전 대통령은 지난 50년간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를 상징하는 정치인이었다. '반(反)독재 민주화'로 '양김(兩金) 시대'를 이끌었던 김대중 전 대통령에 이어 그마저 세상을 떠나면서 한국 정치는 '민주화 시대' '87년 체제'와는 완전히 다른 출발선에 서게 됐다.
김 전 대통령은 박정희 정권 이후 '민주 투사'로서 민주화 투쟁의 최일선에 늘 서 있었다. 1990년 3당 합당으로 민주자유당을 창당했을 때 일부 인사는 "민주화 진영을 배신했다"고 했지만, 그는 이후에도 늘 자유민주주의의 확대를 자신의 정치 지표로 삼았다. 좌파 진영에선 민주화의 역사를 자신들의 자산(資産)으로 독점하려 했고, 산업화·민주화 세력이 연합한 현재의 우파 진영은 '반(反)민주 세력'이라는 공세 앞에 심리적으로 위축됐다. 그런 상황에서 YS의 존재는 우파 진영의 도덕성에 큰 힘을 실어주는 역할을 했다. 3당 합당으로 탄생한 민자당이 신한국당→한나라당→새누리당으로 이어오면서 보수 정권을 연속 재창출했던 것도 YS를 중심으로 한 민주화 세력의 절반이 동참함으로써 가능했다.
김 전 대통령의 서거로 '민주화 시대'는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졌다고 할 수 있다. 강원택 서울대 교수는 "DJ가 서거한 이후 '민주 대 반민주'의 정치 구도는 더 이상 효용이 없어졌다고 했지만 YS가 있음으로써 그 시대적 상징성은 일부 남아 있었다"며 "이제 YS까지 떠나면서 대한민국 정치에서 '민주화'를 중심으로 한 이른바 87년 체제는 공식적으로 저물었다"고 말했다.
YS와 DJ는 개인적으로도 우리 정치에 많은 영향을 미쳤지만, 그와 함께 했던 다른 정치인들을 포함한 '세력'으로서도 의미가 컸다. DJ는 지역적으로 호남을 중심으로 동교동계와 현재의 야당 세력을 상징했다. 반면 YS는 지역적으로는 PK(부산·경남)를 중심으로 상도동계와 새누리당 일부 세력의 대부였다. 그러나 크게 보면 민주화를 기치로 내건 정치 세력은 일부 종북(從北) 세력을 제외하면 보수와 진보 모두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의 자양분 속에 성장해왔다. 진보·좌파 일부는 김 전 대통령을 '기득권 세력'의 울타리 안으로 가두려 했지만 이는 우리 민주화의 역사를 부정하는 일이었다.
현재 야권의 저변부에는 아직도 '민주 대 반민주'라는 '양김 시대'의 시대착오적 인식이 자리 잡고 있다. 김 전 대통령의 서거는 이제 이런 관념 속의 '민주 대 독재'라는 구도 대신 새로운 정치적 어젠다를 여야 모두에게 요구하고 있다. 경희대 윤성이 교수는 "인물 중심으로 전개됐던 '양김 정치'가 끝났지만, 아직 우리 정치는 시스템에 의한 선진 정치로 도약하지 못하고 있다"며 "민주화 이후의 새로운 대안과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