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9월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한 호텔 앞. 1970~1980년대 서방파, OB파와 함께 전국 3대 폭력 조직이었던 양은이파 계열의 순천시민파 조직원들이 승용차를 탄 채 대기하고 있었다. 차에는 길이 40㎝의 생선회칼 2개와 손도끼가 실려 있었다.

이들은 OB파 두목 이동재(64)씨를 발견하자 차로 미행하기 시작했다. 이씨 일행이 서울 성동구의 한 식당에 도착하자, 이들도 흉기를 들고 식당으로 들어가 이씨를 공격했다. 이씨는 강하게 저항했고, 이들은 이씨를 죽이지는 못했다. 이씨는 4개월간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야 했다.

순천시민파 조직원들이 이씨를 살해하려고 한 것은 ‘조직간 보복은 상대 조직의 최고 실력자를 상대로 한다’는 조폭계 불문율 때문이었다. 1987년 11월 서울 서초구 반포동 호텔 나이트클럽에서 양은이파 조직원이 OB파 조직원을 폭행한 일이 있었는데, OB파 조직원들이 보복으로 양은이파 계열인 순천시민파 조직원을 사시미칼로 찌르고 아킬레스건을 절단하는 일이 벌어졌다. 순천시민파가 이씨를 상대로 보복에 나선 이유다.

이 사건 이후 이씨는 미국으로 건너갔다. OB파는 행동대장 출신 조모(54)씨가 맡았고, 조씨는 2005년 폭행 혐의 등으로 구속되기도 했다. 이씨는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슈퍼마켓, 요트 사업 등을 했다.

그러던 중 전남 지역에서 병원을 운영하던 박모(65)씨가 사기 혐의로 이씨를 고소했다. 두 사람은 1980년대 초반 범호남파 두목 오모씨 소개로 만나게 됐는데, 2008년 이씨가 박씨에게서 빌린 돈 2억원 중 6000만원을 갚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씨는 1988년 서울 이태원 일대 유흥업소에서 매달 수백만원을 상납받은 혐의로 구속된 이후 27년 만에 다시 검찰 수사를 받게 됐다. 서울중앙지검 강력부는 지난 6월 이씨를 사기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이씨는 법정에서 “박씨에게 전화해 다른 사람에게 돈을 빌려 주라고 부탁했을 뿐, 박씨로부터 직접 돈을 받은 사실이 없다”고 주장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단독 이흥권 부장판사는 이씨의 혐의를 인정해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고 23일 밝혔다. 이 부장판사는 “중립적 위치에 있는 병원 재무담당자가 검찰에서 ‘박씨가 이동재 사장이 사업 자금이 필요하다고 하니까 2억원짜리 어음을 한 장 끊어 와라’고 진술한 사실이 있다”며 “여러 사정을 볼 때 이씨가 갚을 의사 없이 2억원을 빌린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어 “이씨가 돈을 모두 갚아 고소인이 피고인의 처벌을 원하지 않는 점, 최근 이씨에게 특별한 전과가 없었던 점 등을 고려해 형량을 정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