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오후 8시쯤(현지 시각) 프랑스 파리 18구에 있는 카페 '앙 브락(En Vrac·'시끌벅적'이란 의미)'. 70여 명의 손님이 가게 이름의 뜻처럼 왁자지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여자 친구와 이곳을 찾은 아르노씨는 새로 출시된 보졸레 누보 한 병을 주문했다. 보졸레 누보는 보졸레 지방에서 그해 갓 수확한 포도로 만든 것으로, 매년 11월 셋째 주 나온다. 이날은 올해 보졸레 누보가 첫선을 보인 날이었다. 아르노씨는 "지난 13일 파리 테러는 너무 슬프고, 나도 큰 충격을 받았다"며 "하지만 테러가 두렵다고 계속 집에만 있고 싶지는 않았다"고 했다.
작년 같은 '댄스파티'는 없었다. 간혹 경찰차가 사이렌 소리를 요란하게 울리고 지나가면, 손님들의 시선은 창밖으로 일제히 향했다. 하지만 곧 포도주 잔을 기울이며 대화를 나누었다. 친구와 함께 이곳을 찾은 마엘씨는 "폭력을 두려워하는 것이 테러리스트들이 바라는 것"이라며 "평소처럼 밖으로 나와 포도주를 마신다"고 했다. 일간 르 피가로는 20일 "테러에도 올해도 파리에선 보졸레 누보 축제가 열리고 있다"며 "파리 시민들은 지금 포도주를 마시는 것이 애국하는 길이라 생각한다"고 보도했다. 테러에 저항하는 의미로 포도주 많이 마시기 운동이 벌어지는 셈이다. AP통신은 "테러 발생 이튿날인 지난 14일엔 파리 식당 매출이 평소보다 80%나 줄었지만, 지금은 거의 이전 수준을 회복했다"고 했다.
지난 13일 발생한 파리 연쇄 테러의 충격은 여전히 파리 시민들의 마음을 짓누르고 있다. 하지만 파리지앵들은 의도적으로 외출을 하고 야외 생활을 즐기고 있다. 인터넷에선 '우리 모두 음식점으로(Tous au bistrot)' '나는 테라스에 있다(Je suis en terrasse)'라는 제목으로 야외에 앉아 포도주를 마시고 있는 자신의 사진을 올리는 캠페인까지 벌어지고 있다. 파리 테러범은 금요일 밤을 콘서트장과 야외 카페에서 여유롭게 즐기던 시민들을 목표물로 삼았다. 하지만 파리 시민들은 다시 야외 카페와 음식점으로 나와 테러에 굴복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AP통신은 "프랑스 국민의 자부심이자 삶의 즐거움이던 포도주가 이제는 '저항의 상징'이라는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됐다"고 했다. 프랑스 정부도 이를 독려하고 있다.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은 지난 18일 "카페와 콘서트, 운동경기, 박물관이 없는 프랑스를 생각할 수 있느냐"며 "일상생활이 완전히 정상으로 돌아가야 하며, 이를 위해 경찰을 추가 배치할 것"이라고 했다.
테러 발생 일주일째를 맞은 20일에는 '21시 20분에 만나 소리 지르고 조명을 비추자'는 캠페인이 벌어졌다. 테러가 처음 발생했던 시간에 맞춰 카페와 거리로 몰려 나와 소리를 지르고 음악을 즐기자는 제안이었다. 예전처럼 '불타는 금요일'을 즐기자는 것이다.
파리 테러 이후 미국 소설가 헤밍웨이가 자신의 파리 생활을 기록한 책 '파리는 날마다 축제(A Moveable Feast)'도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이 책의 프랑스어 번역판은 프랑스 아마존닷컴에서 전기(傳記·biography) 부문 판매 1위, 전체 문학 베스트셀러 리스트에서 2위에 올랐다.
프랑스뿐 아니다. 테러 위협에 시달리는 다른 유럽에서도 프로축구 경기 등을 정상적으로 열기로 했다. 영국 프로축구 경기장에선 이번 주말 파리 테러 희생자를 애도하는 뜻에서 경기 전 프랑스 국가(國歌)인 '라 마르세예즈'를 연주한다.
이슬람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가 다음 목표로 언급한 미국 뉴욕시는 테러 위협에도 오는 26일 예정인 추수감사절 퍼레이드를 예정대로 진행하기로 결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