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수요일 오전 7시 무렵 삼성그룹의 사장들이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에 속속 도착한다. 사장단 강연과 회의가 끝나면 기자들은 강연 내용을 홍보 임원의 브리핑을 받아 일제히 보도한다. 사장단에 초청받은 저자의 인기와 책 판매량이 함께 치솟는다.
개별 회사의 학습 프로그램이 이처럼 매주 반복해서 주목을 받는 것은 삼성그룹이 한국 사회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매주 사장단 강연에 관한 기사를 다룰 때마다 고개를 갸우뚱한다. 우선 사장들이 한자리에 앉아서 사람을 초빙해 강연을 듣는 형식이 낡아도 너무 낡았다. 지식이 신문과 책 등 종이 매체 중심으로 유통되던 시절에 유명 저자를 초빙해 듣는 '저자 직강'은 매우 효율적이었다. 저자의 육성을 통해 핵심 내용을 듣고 또 저자와 네트워크를 만들 기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온라인 공간이 첨단 지식의 유통 허브가 되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이를테면 유명한 저자의 직강을 국경과 언어에 구애받지 않고 온라인에서 언제든지 이용할 수 있다. 코세라(coursera.org), TED(ted.com) 등 인터넷 공간에는 기발하고 참신한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들의 동영상 강연이 늘 가득하다. 올해 앵거스 디턴(Angus Deaton) 프린스턴대 교수가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는 소식을 듣고, 유튜브에 접속해 디턴의 직강 동영상을 손쉽게 찾을 수 있었다.
분 단위로 스케줄을 짜는 초일류 기업의 사장이라면 길거리에 시간을 허비하면서 인터넷에 널려 있는 지식을 얻고 싶지 않을 것이다. 실제 삼성의 한 임원은 "새벽잠을 설치고 사장단회의에 참석하는 것보다 1~2시간 더 자는 것이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다"고 상층부를 설득해 강연 참석을 면제받았다.
사장단 강연 목록과 강연 시점도 초일류 글로벌 기업에 걸맞지 않다. 최근 몇 년간 진행했던 강연 목록을 보면 크게 리더십·전략·인문학·첨단 트렌드 등으로 구성돼 있다. 이 중 핀테크·바이오·IT 등 첨단 트렌드를 소재로 한 강연은 세계 지식의 최전선에서 6개월~2년 정도 뒤처져 있다. 삼성그룹 정도라면 적어도 구글·애플 등 초일류 기업과 비슷한 수준의 강연 목록을 짜야 한다.
이왕 사장단 강연 프로그램을 계속 유지하려면 먼저 초청할 강사를 해외로 확대해야 한다. 글로벌 무대에서 떠오르는 지식이 있다면 한국어 버전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바로 접해야 한다. 동시에 강연 전체를 온라인에 올려, 사내뿐 아니라 외부에 완전히 공개하면 금상첨화다. 구글의 경우 저자들을 초빙해 강연을 듣는 프로그램(talks at Google)을 동영상으로 촬영해 유튜브에 올린다.
삼성이 사장단 강연을 인터넷에 개방하면 바쁜 사장들을 오라 가라 할 필요가 없고, 국내 산업계를 비롯해 한국 사회 전체가 삼성 덕을 볼 것이다. 첨단 지식을 독점한 사람이나 기업이 앞서가는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디지털 시대에는 널려 있는 공개 지식을 어떻게 선택하고 연결하여 빨리 새로운 지식을 만드느냐가 기업의 흥망을 결정한다. 수십년 동안 이어온 전통이라도 시대에 뒤떨어졌다면 되돌아보고 혁신하는 게 진정한 전통 계승이 아닐지.